언젠가부터 한국코미디영화는 웃음 70%, 감동 30% 정도 분할의 코드로 채워지게 됐다. 신나게 웃은 뒤 진한 감동까지 얻기를 원하는 관객의 취향을 고려한 탓. 이런 한국 코미디 영화시장에서 윤제균 감독은 일정 부분 감동 코드를 가장 잘 주무르는 사람으로 꼽힌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 그가 만들어낸 코미디는 비록 조폭코미디, 섹스코미디 등을 표방하고 나왔지만 그 안에 사립학교의 전횡, 낙태문제 등 사회문제를 담고 있고, 주인공들의 갈등 또한 절절하게 표현돼다. 약간 조악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전반부 코미디가 지나면 윤제균 특유의 감동코드가 나오는 식이었다. '1번가의 기적'은 이렇게 감동에 장기를 가진 윤제균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드라마. 영화 속에 웃음을 주는 요소도 많지만, 코미디보다는 오히려 감동을 위한 리얼 드라마에 가깝다. 서울 근교 한 철거민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는 비참하고 열악한 빈민의 현실, 꿈도 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의 절망, 버려지고 방치된 아이들 등 지금 우리 사회가 실제로 겪고 있기에 차마 웃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때문에 영화 속 유머에 실컷 웃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히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연민과 동정에 기반한 감동이 찾아온다. 영화는 철거민들을 마을에서 쫓아내기 위해 달동네를 찾은 건달 필제(임창정)를 축으로 1번가 주민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다. 누구 하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기 보다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비슷한 비중으로 담는다. 동양챔피언이었으나 경기 중 사고로 이제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의 꿈을 잇기 위해 권투에 전념하는 명란(하지원), 부모 없이 늙은 할아버지와 살면서 가난한 삶의 비참함을 체험하는 일동(박창익)ㆍ이순(박유선)남매, 미래에 대한 꿈도 없이 다단계 판매 회사에 빠져 사는 선주(강예원)와 그녀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청년(이훈)의 다양한 삶이 화면 속에 펼쳐진다. 초반 제각기 진행되던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 마을에 철거깡패가 본격적으로 들이닥치면서 한곳에 어울린다. 마을을 지키지 위해 절규하는 빈민들의 모습과 이들을 핍박하는 개발세력의 모습이 영화 속에 중첩된다. 실로 비극적일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결말의 갑작스러운 '기적'으로 적당히 봉합한다. 이런 이야기의 엔딩은 허술하고, 자못 황당하게까지 느껴진다.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픈 현실을 담담히 담아오던 영화의 이런 결말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진짜 슬픔을 담아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창정, 하지원 등 주연들의 연기가 탄탄한 영화다. 하지만 이들 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버려진 남매로 출연한 박창익, 박유선. 깜찍하면서도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는 이들의 연기에 박수가 쳐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