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그룹의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한솔제지 총괄 대표이사인 선우영석(65ㆍ사진) 부회장에게 2008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솔그룹은 지난 2005년 창립 40주년을 맞이해 2010년까지 ‘매출 8조원 이상, 법인세ㆍ이자ㆍ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1조원, 현금흐름수익률(CFROI) 10% 이상’을 달성해 ‘세계 최고의 가치창출 기업’을 실현한다는 이른바 ‘비전 2010’이라는 경영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가 올해를 기점으로 반환점을 도는 것이다. 선우 부회장은 그룹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한솔제지가 비전달성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데다 7년째 접어들고 있는 그룹 부회장으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그룹의 경영현황 전반을 총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는 지난 1970년 제일모직에 입사하면서 삼성과 인연을 맺은 이후 줄곧 삼성그룹의 해외부문과 기획업무 등을 맡아 왔으며, 삼성물산의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 뉴욕지사에 근무하면서 경영자로서의 국제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이후 1983년에 국내에 돌아와 삼성중공업과 삼성항공의 해외영업부문 등에서 임원생활을 했다. 만 7년 여에 걸쳐 해외에서 선진 경영 문화를 접한 선우 부회장은 귀국하면서 경영원칙의 제1호를 세웠. 바로 ‘흑자경영’에 대한 철칙이다. 이는 선진 시장에서의 폭넓은 경험을 통해 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식견을 쌓은 선우 부회장이 지금까지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는 제 1의 경영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흑자경영이라는 선우 부회장의 확고한 경영철학은 과거 그가 달성한 경영실적이 입증하고 있다. 1993년 한솔로 자리를 옮긴 선우 부회장은 한솔무역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며 한솔그룹 대외창구의 수문장 역할을 맡았다. 이 곳에서는 그는 국내 제지업체로는 처음으로 1995년 1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한데 이어 1998년 5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회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동시에 국내 제지업을 국제적인 무대로 한 단계 끌어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팬아시아 페이퍼 코리아(현 노르스케 스코그 코리아)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동안에도 매년 매출액을 약 10%씩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리더십과 시장분석을 통해 손익을 대폭개선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재직 중 EBITDA를 30% 이상 증대시키기도 했다 선우 부회장이 다시 한솔제지로 돌아와 2002년 총괄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한솔제지는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또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혁신 노력을 바탕으로 재무구조 안정화와 수익성 제고에 큰 성과를 거두는 등 그는 기업 경영능력을 입증하며 탁월한 전문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그의 경영원칙 중 또 하나는 변화와 혁신으로 비효율을 과감히 제거해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개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부문과 팀의 경쟁력이 형성되고 그 역량이 모여 회사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다 선우 부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비효율을 과감히 제거하고 역량 집중을 통해 회사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경영원칙 아래 전사적인 기업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 기업 내부의 프로세스를 통합해 경영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생산운영과 영업활동의 효율성을 제고했다. 또 대표이사 직속으로 경영혁신팀을 두고 상시적인 경영혁신과 함께 6시그마를 전격적으로 추진하는 등 임직원들의 혁신 마인드 제고를 위해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고 있다. 그는 회사경영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라는 철학 아래 인재를 중시하고 조직원 개개인이 각 분야에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인적 개발투자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즉 ‘열 경영을 통한 공감대 형성’을 강조하며 수시로 사업장 등을 방문해 사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격의없이 회사경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친밀하게 직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특히 눈에 드러나는 실적보다 임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혁신 마인드를 심어 주며 직원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선우 부회장이 말하는 올해 화두는 ‘성장과 도약을 위한 시너지 창출’이다. 이는 글로벌 경제침체 등 대내외 경영환경의 악화로 인해 시너지 창출을 이뤄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위기의식 아래 올해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장과 도약을 위한 시너지 창출’은 내부부문간, 특히 영업과 생산부문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선진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각 부문의 내부관리와 업무역량 수준을 끌어올려 수익성 제고에 대한 노하우 및 혁신성과 공유 등 경쟁과 통합을 통한 부문간 효율의 최적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또 기존 제지사업을 기반으로 유통과 솔루션 등 신규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해 적극적인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 유통 장악력을 강화하고 영업실적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존사업과 신규사업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등 불확실한 경영여건 가운데서도 회사의 생존과 수익성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 할 방침이다.
선우영석 부회장은 선우영석 한솔제지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국제적인 경영감각, 추진력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는 한솔의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70년 제일모직에 입사해 삼성과의 인연을 맺은 이후 1993년 한솔로 옮기기 전까지 줄곧 삼성그룹의 해외부문과 기획업무 등을 담당했다. 한솔에서는 그룹의 대외무역 부문을 맡아 국내 제지업체로는 처음으로 1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한데 이어 5억달러 수출탑을 달성했으며, 199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중국 상해에 30만톤 규모의 신문용지 생산 합작공장을 세우는 등 우리나라 제지산업을 국제화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팬아시아 페이퍼 코리아(현 노르스케 스코그)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실적으로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02년부터 한솔제지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강도 높은 경영혁신 노력을 통해 탁월한 실적개선을 이뤄냈으며 현재 그룹과 제지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으로서 기존 사업분야의 경쟁력 강화 및 관련 신규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1944년 서울생 ▦1970년 연세대 경영학과 ▦1970년 삼성그룹 제일모직 입사 ▦1993년 한솔무역 대표이사 전무 ▦1997년 ㈜한솔(옛 한솔무역) 대표이사 사장 ▦1999년 팬아시아 페이퍼 코리아(팝코 한국법인) 대표이사 사장 ▦2002년 한솔제지 대표이사 부회장 경영원칙 ▦흑자 경영 ▦변화와 혁신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 ▦경쟁과 통합을 통한 효율 최적화 ▦개인 역량 집중해 회사 경쟁력 강화 |
해외서 치열한 경쟁·선진경영 경험 선우영석 한솔제지 부회장이 가장 중요시하는 경영철학은 '흑자경영'이다. 흑자경영에 대한 그의 확신은 오랜 기간 동안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치열한 경쟁과 선진경영을 접한 결과물이었다. 업계에서도 그를 글로벌 감각이 탁월한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당시 국내 산업계는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국내 경제가 끊임없는 고속성장을 구가하면서 무한확장에만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 내부에서도 흑자경영에 대해 논쟁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선우 부회장의 경영원칙은 확고부동 했으며 이 원칙은 1993년부터 한솔그룹의 대외무역 창구 역할을 위해 설립된 한솔무역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보다 깊이와 체계를 갖춘 경영철학으로 거듭난다. 당시 한솔그룹은 삼성으로부터 분리ㆍ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틀이 잡히기 전이었으며 이로 인해 세계 무대에서의 대외업무에 서툴렀지만, 선우 부회장은 세계시장이 어떤 것인지, 수출이 왜 중요한 지를 설득하는 전도사 역할을 수행하며 눈부신 경영실적을 달성한다. 선우 부회장은 1999년 세계 유수의 제지기업들과 합작해 설립한 신문용지 전문법인 팬아시아 페이퍼 코리아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문화와 이해관계가 다른 3국 이사진들을 설득하며 우량 회사로 발돋움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선우 부회장이 2002년 한솔제지로 자리를 옮길 때 싱가포르 본사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사진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사의를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지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한솔제지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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