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나생명에 근무하는 텔레마케터 이동은(가명)씨는 27일 본부가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는 대부분 보험사들이 텔레마케팅(TM) 영업을 할 수 없게 됐으니 생명보험사 중에선 우리(라이나생명)만이 영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독점'이라는 설명에다 우리에게 지금은 '기회'라는 구호도 게재됐다. 그러면서 주위에서 방황하는 타사 텔레마케터를 '리쿨(리쿠르팅)'하고 (실적을 올려) '해외로 나갑시다'라고 끝맺었다.
금융당국이 TM 의존도가 높은 보험사와 카드사 등의 TM 영업을 전면 금지하면서 불공정 경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조치에 따라 금융사 간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데 TM 비중이 높아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 외국계 보험사가 특혜를 받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TM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 외국계 보험사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타사 텔레마케터를 영입(리쿠르팅)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국내 TM 시장의 근간을 해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이번 대책이 특혜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이 금융당국이 이번 대책을 추진하면서 밝힌 원칙의 '무원칙'이다. 금융당국은 TM 영업이 불법 유통 개인정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고 특히 '무차별적인 대출 권유 방식'인 문자메시지 서비스(SMS)·이메일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TM 판매 비중이 70%인 보험사 7곳은 예외로 둔다고 못 박았다.그러나 당국의 이 같은 원칙에 대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논리적으로 보면 TM 판매 비중이 높을수록 불법 유통 개인정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TM 비중이 낮은 보험사의 경우 대면 채널을 통해 개인정보 논란에 따른 영업 위축을 상쇄할 수 있다.
라이나생명 같은 TM 특화 보험사가 벌써부터 인력 사재기에 나서려는 것도 결국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사실 보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영업정지 기간을 틈타 인력을 뺏길 경우 TM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명확한 원칙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국의 대책은 전형적인 '땜질식' 대응밖에 안된다"며 "TM 비중이 높은 외국계 보험사에서 과열 경쟁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불법 영업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봐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TM 시장이 이미 완전자유화된 시장이라는 점도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TM 시장은 온라인이라는 채널 성격상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영업 역량 차이가 크지 않다. TM 시장은 지점 설치 비용이나 설계사 운영 비용이 오프라인 채널에 비해 크게 낮기 때문이다. TM 영업 중단 대상에서 외국계 보험사들이 제외된 것도, 또 라이나생명처럼 후발주자이면서도 급성장하는 보험사가 출현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외국계 보험사의 TM 비중이 높은 것은 국내 시장 진입이 늦은 데다 인력 투자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라며 "더욱이 TM 시장은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구분이 없을 정도로 100% 자유 경쟁 시장이어서 이번 대책은 외국계 보험사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예외 대상을 선정하면서 총수가 아닌 비율로 원칙을 잡은 점도 불공정 시비 논란이 되고 있다. 당국이 무엇을 근거로 '70%'로 TM 비중을 못 박았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제외 대상을 비율로 잡으면서 일부 텔레마케터들에 대한 고용의 역차별을 유발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 예로 손보사 중 TM 영업 규모가 큰 동부화재는 TM 인력이 약 1,500명인 데 반해 TM 비중 70% 초과로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 하이카다이렉트의 경우 TM 인력이 약 500명에 불과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이번 대책이 유발하는 부작용 중 가장 큰 것이 텔레마케터들의 고용 문제인데 TM 비중의 차이로 텔레마케터 간 고용의 질이 극명하게 엇갈리게 됐다"며 "당국의 대책이 졸속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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