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부쩍 바빠지고 있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벤처업체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투자를 위해 심사작업을 해야 할 업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투자 대상 벤처기업들은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과 산업재, 기계·장비 관련 업체들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 들어서는 모바일서비스와 바이오 등 새로운 분야에서의 창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신기천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반려동물 용품을 정기 배달해주는 업체인 '펫츠비'라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처럼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아이디어 벤처들이 많아지면서 투자를 고려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중소기업청과 벤처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현재 창업기업 수는 3만7,640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 늘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창업기업은 사상 처음으로 9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8만4,697개)보다 6%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벤처기업도 올 들어 처음으로 3만개를 돌파한 상황이어서 대한민국 벤처생태계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2000년대 초반과 같은 벤처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오는 게 아니냐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벤처 붐이 다시 이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동력으로 벤처창업 활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벤처생태계가 활기를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벤처 정책의 패러다임은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이명박 정부 당시 창업투자보조금 제도가 도입되는 등 직접지원을 중심으로 벤처 정책의 구조가 짜였다면 이 정부 들어서는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프로그램(TIPS)과 창업인턴제 등 정부가 판을 깔아주고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중심형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중소기업 유관기관들의 창업정책 성과도 초기 벤처나 성숙기 벤처기업뿐 아니라 창업 3~7년차 데스밸리에 갇힌 기업들을 발굴, 육성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사관학교는 지난 4년간 총 963명의 청년 창업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하면서 매출액 2,591억원, 일자리 창출 3,998명, 지적재산권 1,428건 획득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기술보증기금은 예비 창업가 사전보증, 청년창업 특례보증 등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젊은 인재들의 창업을 유도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중기청과 창업진흥원은 4월 데스밸리 극복을 위해 '창업도약 패키지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영수 벤처기업협회 전무는 "정부가 융자가 아닌 투자 중심으로 벤처기업을 지원하면서 벤처캐피털과 창업 액셀러레이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정부의 마중물로 민간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양질의 벤처 씨앗들이 많이 뿌려지면 그만큼 창업 성공사례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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