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협력과 화해의 분위기 모색은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30일 열린 한나라당 신임 주요당직자 초청 만찬에서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함께 해줬으면 한다"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물론 대기업이 어느 때보다도 노력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적 분위기가 서로 협력하는 쪽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에 비판적이었던 발언과 비교하면 다소 부드러워진 주문인 셈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는 "전경련이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곤란하며 사회적 책임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대기업과 전경련을 질타한 바 있다.
정부와 재계 간 갈등의 불씨가 됐던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정병철 부회장이 "정부를 도우려던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밝히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특히 대기업들은 대통령의 '사회적 책임' 발언 이후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재정비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의 계획을 수립하는 등 '자발적 상생'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일부 총수들은 직접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협력 분위기 조성에 애를 쓰는 모습이다.
한편 지난달 31일 전경련 하계 포럼 마지막 날 행사에 참석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역시 그간의 갈등 봉합에 나섰다.
윤 장관은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고 이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경기회복의 최대 공로는 기업인들의 몫"이라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 장관도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우리 기업인들이 가장 많은 애를 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데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최고의 자랑거리이지 감출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양측의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씨는 계속 살아 있다.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윤 장관과의 면담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전날 발언을 두고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 장관은 어느 나라 장관이냐"고 꼬집었다. 반면 윤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특히 대기업들이 현금성 자산을 몇 십조씩 가지고 있지만 납품 중소기업에 어음을 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을 넘어선 탐욕"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최 장관 역시 "어려울 때는 같이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사정이 나아졌으면 허리띠를 같이 풀어야 한다"며 대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또 "대기업 스스로 상생에 나서야 하며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대기업의 위기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재계를 압박하는 '톤'은 조절하되 중소기업 상생이라는 정책적 원칙은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전경련 하계 포럼에 참석한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정부와 재계의 '불안한 화해'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될수록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이 더욱 어려워지는 과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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