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ㆍ유럽연합(EU)ㆍ중국 등 강대국의 정보통신 패권다툼의 와중에 그동안 공들여온 차세대 IT 기술들이 국제표준에서 밀려나면서 우리나라가 ‘국제표준 외톨이’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 특히 와이브로(무선인터넷), 모바일 TV, 3세대(3G) 이동통신 주파수 등 핵심 IT 기술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어 자칫 미래 성장동력 상실로 연결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EC)는 최근 세 가지로 나뉜 모바일 TV 기술표준을 단일화하기로 한 데 이어 단일표준 대상으로 삼성전자ㆍLG전자 등이 개발한 DMB 대신 노키아의 DVB-H에 대해 공식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실제 비비안 레딩 정보사회와 미디어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 비즈니스리더 회의에서 모바일 TV 표준에 대해 “우리는 유럽 표준을 갖고 있다”며 “유럽에서 발전하고 유럽 자금이 투입된 DVB-H 기술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만약 노키아의 DVB-H가 유럽 단일표준으로 채택되면 국내 모바일 TV 단말기 업체들은 노키아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EU 시장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도 중국의 강력한 견제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와이브로는 당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파통신 부문 연구반 회의에서 3세대(3G) 표준으로 합의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중국과 독일 등 일부 국가의 반대로 무산됐다. 특히 중국의 반대가 워낙 거세 오는 10월 열리는 ITU 전파총회에서 표준으로 채택될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유럽 이동통신 및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중심인 GSM협회(GSMA)는 최근 IT 분석기관인 오붐(Ovum)을 통해 3G 이동통신의 공식 주파수 대역에 현재의 2.1GHz 외에 900MHz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00MHz대역은 보다폰ㆍO2 등 유럽 이통사들이 이동통화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한국 이통사는 이 주파수로 서비스하지 않는 실정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IT 산업이 발전하려면 유럽이나 미국ㆍ중국 등 넓은 시장이 필요한데 이들 나라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표준을 채택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다”며 “이 경우 제조업체들도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우리 독자기술은 변방기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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