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백기사'를 자처해온 연기금이 새해 들어 코스피 대형주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며 지수 하락을 막는 증시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 순매수금액을 전년보다 절반이나 줄이면서 백기사로서의 체면을 구긴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내건 정부 정책이 본격화되고 지난해 낙폭이 컸던 대형주들이 반등을 모색하는 등 연기금의 수급 여건이 개선되는 만큼 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가들이 코스피를 이끌어가는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317억원 어치를 사들이며 지난 23일 이후 6거래일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갔다. 이날 오전만 해도 매도세를 지속하던 연기금은 외국인과 투신이 전날에 이어 대거 매도물량을 쏟아내자 다시 순매수세로 돌아서며 지수 하락을 막았고 결국 코스피는 낙폭을 줄이며 전일 대비 0.09%(1.76포인트) 내린 1,949.26포인트에 장을 마감했다.
연기금이 올 들어 순매수로 돌아선 23일부터 6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사들인 주식은 총 8,220억원이다. 이 가운데 매일 1,000억원 넘게 사들인 26~29일의 4거래일 동안만 무려 7,850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연기금과 더불어 기관의 또 다른 중심축인 투신이 4,670억원이나 팔아치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연기금은 개인과 외국인·투신까지 모두 순매도한 28일에는 홀로 3,157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코스피지수를 오히려 0.47% 끌어올렸다. 연기금이 하루에만 3,000억원 넘게 순매수한 것은 2011년 8월9일 이후 약 3년6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해 들어 연기금이 지난해 낙폭이 컸던 대형주를 중심으로 매수세를 이어가면서 국내 증시의 수급 주체로 떠올랐다"며 "연기금은 지수를 끌어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수를 떠받치면서 급락을 막는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기금은 올 들어 시가총액 상위종목의 대형주 중심 매수전략을 펼치면서 코스피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연기금은 본격적으로 매수에 나선 26일부터 30일까지 삼성전자(005930)(2,016억원)와 네이버(622억원)·SK텔레콤(017670)(522억원)·현대모비스(012330)(460억원) 등 대형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이 기간 연기금의 매수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코스피 시총 20위권 내 기업은 8곳이나 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와 달리 올 들어 연기금의 수급 여건이 개선되는 만큼 순매수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정부 경제 당국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한 내수경기 회복을 목표로 하는 만큼 정부 정책에 화답하는 차원에서라도 주식시장에 대한 연기금의 매수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연초부터 대기업들의 잇따른 배당확대 발표와 지난해 낙폭이 과대했던 대형주들이 점차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연기금의 순매수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그동안 연기금이 주로 사들이던 정유·화학·조선·기계 등 산업재 관련 종목들이 지난해 유가급락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연기금의 순매수 규모 축소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며 "유가 하락세가 진정되고 2·4분기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삼성전자·현대차(005380) 등 대기업의 배당확대 등으로 연기금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만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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