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에 건축자재업과 석유 관련 사업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던 중년의 사내에게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업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배운 것만 빼고 주위에 남은 사람도, 돈도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약 10년 가까이 미국에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광활한 시장을 접한 후 '여기에서 내 밥벌이 하나는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즈음,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원두커피의 세계에 눈뜨게 됐다. 그 길로 그는 중고 로스팅 기계 하나를 가지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90년대만 해도 믹스커피 뿐이었던 한국에서 본격적인 한국식 원두커피를 표방한 씨즈커피코리아는 그렇게 탄생됐다.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준서 씨즈커피코리아 대표(73·사진)는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창업을 한 덕분에 매일 목표를 하나씩 이뤄가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사업 덕분에 얻게 된 경제적 여유보다 내 사업체를 일궈간다는 생각 덕분에 중년 이후의 시간을 누구보다 값지게 쓰며 희망을 늘 품고 사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 편의점용 컵커피 시장을 새로 개척한 씨즈커피코리아는 매년 20% 이상씩 성장세를 기록하며 어느덧 100억원의 매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승승장구를 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사업이 막 자리를 잡아갈 4~5년차 무렵, 수해가 닥쳐와 유일한 자산이었던 로스팅 기계와 각종 장부가 모두 물에 잠기는 위기를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한 지방 세무서에서는 세금추징을 시도해 당장 사업을 문닫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도 보내야 했다. 수해 증명 사진과 각종 자료를 들고 세무서, 원두 납품업자, 주요 유통망을 가릴 것 없이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결국 세금추징이 무고하다는 판결을 받고 사업도 본궤도에 올랐지만 당시의 기간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 칠 정도로 힘들었다고 임 대표는 회상한다.
임 대표는 "30~40대의 성공과 좌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결코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오십 줄에 접어들며 회사의 성공 여부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에 직원들과 함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임 대표를 믿고 따라오며 궂은 일을 도맡았던 직원들은 현재도 함께 회사를 일궈가고 있다.
임 대표는 최근 본격화되는 시니어 창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창업에 뛰어들면 그 전에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었든지 과거의 권위의식과 태도를 일체 버려야 한다"며 "철저하게 낮은 자세에서 소비자의 마음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단단한 마음가짐도 조언했다. 임 대표는 "중년에 창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다들 만류하기 급급했다"며 "심지어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내가 혹시나 돈 빌려 달라고 할까봐 주위 친인척과 지인들이 나를 한동안 피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어느덧 고희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젊은 사업가들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최근 해외진출의 성과가 속속 드러나며 제2의 창업을 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러시아 시장에서는 매년 100% 이상씩 매출이 증가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세븐일레븐·뱅가드 등 현지 대형 유통망과 계약을 맺었다.
끝으로 임 대표는 "중년의 나이일 때만 해도 나이 70이 되면 무슨 낙으로 살까 걱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앞으로 중국인들을 사로잡을 커피를 만들 생각만 하면 과거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앞으로 13억을 사로잡는 한국 최초의 커피제조회사가 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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