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책제도를 개선한다는 말을 하도 들어 이제는 기대가 안 되네요."
중소기업 대출규모가 상위에 꼽히는 한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여신담당 부서 직원들은 금융감독원의 중소기업 면책제도 개선방침에 이같이 답했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 면책제도가 잘 정착해 있다고 자평했지만 실제 대출창구의 반응은 썰렁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나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잇따라 중소기업인을 만났을 때도 반응은 은행 직원과 매한가지다. 중소기업의 잠재력만 보고 대출해줄 것이라는 당국의 말과 달리 은행 문턱은 높기만 하다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인은 지난 3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최 원장에게 "금감원은 은행 군기만 잡지 말고 면책제도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이 같은 온도차를 나타낸다.
◇은행 직원은 인사 불안감=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담당자들은 당국의 면책제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면책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중소기업 여신담당 과장은 "내부적인 면책기준이 있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같아서 부실이 생겼을 때 걸고 넘어가려면 다 포함된다"며 "그나마 담보대출은 기준이 명확하지만 신용대출은 기준이 모호해서 나가면 돈이 돌아올 때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면책비율이 99%에 가까운 은행의 한 직원은 "단 한건이라고 해도 내가 면책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면서 "은행 내부든 금감원이든 누군가 심사 부주의라고 지적당하면 내가 중소기업 대출을 심사하는 데도 소극적이 된다"고 전했다.
◇국책은행은 감사원 눈치보기=국책은행은 일반은행에 비해 감사원 등 이중ㆍ삼중의 감사를 받기 때문에 면책 효과가 약하다고 말한다. 산업은행 같은 정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은행은 내부 감사 외에 감사원과 금감원, 때로는 예금보험공사와 국회의 감시를 받는다.
국책은행의 한 중소기업 대출 담당자는 "위에서는 창조금융이라면서 중소기업대출을 늘리라고 독려하지만 섣불리 대출했다가 나중에 감사에서 걸릴 수 있다"면서 "금감원이나 은행 내부에서는 그나마 면책제도를 반영하지만 감사원이나 다른 기관은 잣대가 다른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괜히 지원했다가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부도가 나면 꼭 감사원이 징계한다"면서 "여러 건의 중소기업 지원 중에서 일부 전액 손실이 나도 다른 곳에서 만회하면 되도록 정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은 매년 국책은행을 감사하기 때문에 당국은 이를 피해 검사하게 된다"면서 "당국도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면책 악용한 빠져나가기=일부 은행에서는 면책제도를 악용해 부실여신의 책임을 피하려 했다가 금감원에 적발됐다.
2012년 4월10일 제도 개선 이후 금감원이 시중은행을 검사한 결과 면책판정을 기다리고 있던 30건 전부가 면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부분이 건당 수십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었다"면서 "실질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이 아니라 시행사 대출이며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는 시점이어서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부실을 막을 수 있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부실이 확실한 PF여신을 해놓고 강화된 면책제도로 이를 빠져나가려는 시도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이 같은 부동산 PF대출 면책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 면책대상인 중소기업 기준에 해당하는 시행사가 많다. 또한 면책기준이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문제가 있는 대출까지 면책을 해주기도 한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PF는 대출규모가 크기 때문에 실적을 올리려는 은행의 부장 이상 임원진이 결정한다"면서 "창구직원보다 기업의 사정은 모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대출을 승인해도 막을 수 없다"고 전했다.
박대동 의원은 "꼭 필요한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려는 면책제도의 취지가 은행 창구에는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국과 현장 간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