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표’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대한페인트잉크는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한때 공장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당시 이 회사는 창사 52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내몰렸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노사가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최고경영자는 ‘윈도우 경영’을 도입해 전직원들에게 현재의 경영상황, 사업실적, 전월의 손익상태 등을 일일이 보고하며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등 신뢰경영에 나섰다. 직원들도 자발적인 휴일 무급 근무, 복리후생 축소, 생산비와 운영비용 절감운동을 펼쳤다. 대한페인트잉크는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섰으며, 생산량도 70%이상 늘어났다. 덕분에 회사를 떠났던 90여명의 직원들도 다시 소중한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경제는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악화로 제2의 IMF를 연상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9월 불거진 키코사태로 경영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의 연쇄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향후 중소기업들의 경영환경에 대한 예측과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11월 중소제조업의 업황전망건강도지수(SBHI)는 79.6으로 전월에 비해 5.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들은 특히 생산과잉 및 판매(내수ㆍ수출) 부진, 환율불안, 자금사정 악화 등을 경영상 어려움으로 꼽고있다. 사실상 전방위적인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는 법. 전문가들은 현재의 위기국면을 기업쇄신 및 재도약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중소기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자원에 대한 코스트 관리가 필요하며 외부적으로는 신성장 동력 및 판로 개척 등을 통한 성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내부적인 코스트관리 차원에서는 핵심 역량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하되, 필요하다면 일부 사업부문에 대해 아웃소싱을 추진해야 한다. 중소기업경영전략연구원의 장택균 이사는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전략은 ‘비움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며 “기업의 핵심부문은 집중 육성하되 단순히 비용절감차원의 아웃소싱 뿐만이 아니라 제품혁신과 연구개발(R&D)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아웃소싱을 추진해야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기업 외부적인 차원에서는 신성장 동력 모색을 위한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인수ㆍ합병(M&A)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M&A포럼의 김종태 대표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 시장의 경우 M&A도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게 보편적”이라면서 “국내에선 중소ㆍ벤처기업의 창업자가 회사를 매각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비도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 M&A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국내 기업인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현재와 같이 위기 경영이 필요한 시기에 M&A는 신규사업 진출 시 소요되는 비용과 신시장 진입에 따른 규제 및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이다. 매도자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매각해 기업을 슬림화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전략적 M&A를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기술 및 마케팅 부분 등에서 매도ㆍ매수자 공동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익성 연구위원은 M&A의 대안으로 ‘공동화 사업’을 제시하기도 한다. 김 연구위원은 “공동화 사업은 두 개의 업체가 각각의 핵심기술이나 경영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판로나 마케팅 등 일부 경영 수단을 공유하는 전략을 의미한다”며 “단순한 의미의 사업부문 아웃소싱이나 M&A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전략을 마련하는데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노사간의 신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독일의 폭스바겐이 과거 3년여에 걸쳐 사업부문 아웃소싱 및 생산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사상 처음으로 3만6,000명에 대한 감원까지 단행하며 유럽식 구조조정의 신모형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도 노사간의 굳건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장 이사는 “위기의 순간일수록 고용자 차원에서는 기업 전체의 비전을 제시해 고용자들이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근로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며 “더불어 고용ㆍ생산ㆍ품질 등 모든 부문에 걸쳐 노사간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확대해 갈등 구조를 최소화하는 경영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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