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등 '머리쓰는 게임' 좋아해요"<br>盧 대통령과 사시 합격전 인연… 연수원서 8인회 모임으로 재회<br>정부 소송사건 수임 많은건… 他 로펌서 꺼려 우리가 맡은것<br> 연말께 '장기발전계획' 마련
강보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대화에 대해 매우 민감해 하고, 조심스러워했다. 오해나 구설에 휘말려 노 대통령에게 조금이나마 누가 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실제 8인회 동기들은 노 대통령 당선 직후 “우리는 멀리서 지켜보자”며 애써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둬 왔다고 한다. 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국정평가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강 대표는 노 대통령과 연수원 ‘같은 반’ 동기 수준이 아니라 이른바 ‘8인회’의 멤버다. 이 가운데서도 노 대통령과 인연을 가장 먼저 맺었다. 강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오프”를 부탁했지만 내용이 재미있어 나중에 강 대표의 양해를 얻을 요량으로 먼저 ‘오프 더 레코드’를 깨기로 했다. 강 대표의 입을 통한 노 대통령 얘기는 흥미로웠다.
◇ "8인회가 스터디 모임이라고요?"
강 대표는 “일부 언론이 8인회를 스터디 모임이라고 표현했던데 사실 그건 맞지 않다”며 웃었다. 강 대표에 따르면 8인회는 사법시험 17회에 합격해 지난 1975년 사법연수원 7기로 입소한 이들이 같은 반의 같은 줄에 모여 앉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당시 사법연수원은 나이 순으로 자리를 배정했는데 한 줄에 7명이 나란히 앉게 됐다. 이 줄에는 이종왕 전 삼성그룹 법무실장, 정상명 전 검찰총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조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 서상홍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김종대 헌법재판소 재판관, 그리고 강 대표가 앉았다.
노 대통령은 당시 연장자 축에 끼어 이들보다 앞줄 제일 오른쪽에 앉게 됐다. 노 대통령 바로 뒷자리에 않아 있던 서 사무처장과 잘 어울리면서 ‘브릿지’ 멤버로 합류했다. 브릿지는 카드 놀이의 일종인데 당시 연수생 사이에서 유행했다. 강 대표는 “이종왕이 잘했고 정상명과 노 대통령은 (게임을) 잘 하진 못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연수원 7기는 모두 58명에 불과할 정도여서 검찰은 지망만 하면 전원 서울에 발령날 때라 지금처럼 치열하게 공부하진 않았다고 강 대표는 실토했다.
◇ "노 대통령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꿈이었다"
강 대표와 노 대통령과의 인연은 8인회 모임보다 앞선다. 강 대표는 잠시 아르바이트 삼아 하던 ‘고시계’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강 대표는 “당시에는 3월에 사시 합격자를 발표하고 9월에 연수원에 입소했기 때문에 6개월의 시간이 있었다”며 “고시계에서 그해 사시 합격자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그 자리에 노 대통령이 나왔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강 대표는 “좌담회가 밤 10시쯤 끝이 났는데 노 대통령은 부산이 집이라 서울에 친인척이 없어 머물 곳이 없었다”며 “누추하지만 우리 집(동소문)에서 데려갔는데 이것이 첫 인연이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또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올림픽에 나가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강 대표는 “듣기 황당할 수 있지만 노 대통령은 변호사 개업 후 얼마 안있어 올림픽 선수로 출전해보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강 대표는 “노 대통령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요트 종목이 가장 무난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요트를 배울 정도로 열성을 보였는데 그게 잘못 알려져 ‘호화 요트’ 파문을 일으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강 대표는 “절대 쓰면 안돼요”라며 단서를 달았다.
◇ 정부 소송 싹쓸이? "천만에요"
노 대통령과의 이 같은 인연 때문에 화우는 외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강 대표도 이것이 무척 부담스럽다. 그는 “‘화우가 노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에 정부 소송을 많이 맡고 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일축하고 “세간의 오해가 억울하다”고 했다.
“화우 변호사 가운데 조대현 변호사와 나 두 사람만 (노 대통령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 둘의 비중은 미약하다. 과거 정경유착 때 처럼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강 대표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통계수치도 내 보였다. 화우는 2003년 법무법인 화백과 우방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도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병한 것”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강 대표는 “법인을 합치려면 최소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2002년 초에 노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되냐”며 “참여정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소송 수임료는 싸기 때문에 다른 메이저 로펌이 꺼리는 것을 우리가 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통합 화우' 이끄는 명장 CEO
화우는 내년 2월6일이면 창립 5년째를 맞는다. 다른 경쟁 로펌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 소송을 싹쓸이해서가 아니라 전문화를 화두로 시장상황에 잘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조직이 합쳐서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고, 다른 문화를 하나로 화합하는데 주력을 했다”며 “첫 시작 때보다는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어 앞으로 3년 후, 5년 후 모습을 기대해 달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3년만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은 지금의 성장속도를 이어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며 “올 연말쯤에는 화우의 중ㆍ단기계획은 물론 장기발전계획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를 위해 화우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내부 운영체계도 개선했다. 올 1월 AMP(Administrative Managing Partner)제도를 도입, 조세법 전문가인 임승순 변호사를 전담으로 임명해 경영상황을 매달 파트너회의에 보고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 어릴 적 꿈은 "목사"
강 대표의 어릴 적 꿈은 목사였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 속에서 컸기 때문에 대학 때도 신학을 공부하길 원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을 꺾을 생각조차 못해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함경도에서 월남해 한평생 고생하신 부모님을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게 하자는 생각이 평생을 지배했다”며 “대학 때 남들 다하는 데모(집회)에도 신경을 안썼다. 데모는 사치로 생각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강 대표는 “판사가 되면 부모공양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선택한 길이 변호사였다. 그렇게 빨리 변호사를 하리라 생각 안했는데 한 번 생각하니 일주일만에 굳어졌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브릿지, 스도꾸(숫자맞추기 게임) 등 ‘머리 쓰는’ 게임을 엄청 좋아한다. 그는 “난 머리를 긴장시키고 하는 걸 좋아한다. 게임하면서 머리 짜내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바둑도 아마 5단이다. 기원 가서 내기 바둑 하는 게 아니라 2~3시간씩 두는 바둑이라고 한다. 골프도 좋아한다. 대학 때는 법대 야구선수 대표로 나갔을 정도로 팔방미인이다.
강 대표는 묵묵히 일하는 직원을 좋아한다. 그는 “업무를 지시해놓고 새벽 1시나 2시에 리턴 메일이 들어와 있으면 감동받는다. 묵묵히 일하다 보면 쉽게 알려지지 않고 손해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결국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 법무법인 화우는? 송무분야 10개 전문팀 배치 '국내 최고능력'
법무법인 화우는 2003년 2월 법무법인 화백과 우방이 합쳐져 출범했다. 화우는 송무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송무그룹 내에는 전문분야별로 부동산건설팀, 의료팀, 조세팀, 행정팀, 노동팀, 헌법팀, 일반상사팀 등 10개의 전문팀이 소속돼 있다.
각 팀의 파트너 변호사들은 대부분 법원이나 검찰에서 오랜 기간 재판ㆍ검찰 실무를 다룬 스타급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다. 또 공정거래팀과 M&A팀 그리고 지적재산권팀 역시 수많은 실무경험을 통해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 가운데 공정거래팀의 박성범 변호사와 M&A팀의 한상구ㆍ신영재 변호사 등은 화우의 '스타 변호사'로 통한다. 의료팀의 이경훈 변호사와 노동팀의 박상훈 변호사도 특수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 강보현 약력
▦ 1949년 서울 출생
▦ 1968년 대광고 졸업
▦ 1972년 서울대 법대 졸업
▦ 1975년 17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7기)
▦ 1980년 부산지법 판사 ▦1984년 수원지법 판사
▦ 1986년 서울북부지원 판사
▦ 1988년 서울고법 판사
▦ 1990년 변호사 개업
▦ 1993년 법무법인 화백 설립
▦ 1997~2001년 사법연수원 초빙교수
▦ 1999년~현재 SK케미칼 사외이사
▦ 1999~2005년 공영토건 파산관재인
▦ 2000년~현재 영산대 겸임교수, 신화건설 파산관재인
▦ 2005년~현재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현대상선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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