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프랑스의 대표 미디어 종합기업 비방디(Vivendi)는 주당 2유로씩 총 67억5,000만유로(약 8조5,000억원)의 추가 배당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향후 2년간 대규모 배당을 하겠다는 것이다.
비방디가 천문학적 배당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PSAM(P Schoenfeld Asset Management)의 공격 때문이다.
2012년 7월부터 비방디를 공격하기 시작한 PSAM은 0.8%의 지분을 무기로 무려 90억유로의 배당을 요구했다. 비방디가 미래 투자용으로 보유한 150억유로의 현금자산을 PSAM이 파고든 것이다.
결국 비방디는 두 손을 들었다. 90억유로까지는 아니지만 67억5,000만유로를 내놓았다. 장기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워놓았던 회사는 투자재원을 고스란히 투기자본에 바치고 말았다.
삼성물산 사태에서 보듯이 헤지펀드가 우리나라 기업을 마음대로 주무르게 두면 한국 기업들도 프랑스의 비방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의 장기성장과 관련 없이 단기적인 주주환원 정책에만 매달려 장기 투자자금과 계획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자본에도 엄연히 국적이 있고 우리의 토종기업을 보호할 책임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민간에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9일 "PSAM의 비방디 공격은 헤지펀드 공격으로 인한 기업의 타격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차등의결권제도나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방어제도 보완을 시급히 추진해야 하며 경제주체 모두가 독하게 마음 먹고 (헤지펀드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럽 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2000년부터 이뤄진 1,740건의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경영 개입 사례를 보면 대부분 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겉으로만 주주이익 극대화를 내세울 뿐 이들은 단기간에 차익을 남기는 데만 주력한다는 뜻이다.
삼성물산을 공격하고 있는 엘리엇매니지먼트만 봐도 삼성물산에 현물배당과 중간배당을 요구해놓은 상태다. 단물을 먼저 빼먹겠다는 것이다.
비방디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방디는 1주1의결권 제도를 시행하다 PSAM의 공격을 받고 2년 이상 보유주주는 2배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의결권제도를 4월에야 도입했다.
대응이 늦어진 시간만큼 기업의 타격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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