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의 지정학적 분쟁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대러시아 추가 제재를 단행했고 이에 러시아는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맞섰다. 이슬람국가(IS)를 파괴하기 위한 미국의 시리아 공습에도 러시아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양국 간의 관계가 21세기 신냉전으로 일컬어질 만큼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1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에서 "러시아 금융·에너지·국방 분야에 대한 제재를 확대할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서 대가를 치르게 할 뿐 아니라 정치적 고립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또한 미국과 보조를 맞춰 대러 추가 제재에 나서기로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제재 대상 및 내용은 12일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로스네프트·가스프롬네프트(가스프롬 석유 부문), 우크라이나 반군 지도자 및 푸틴의 측근 등이 리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 간의 휴전협정 체결 이후 서구권은 대러 제재 시행을 보류해왔다. 그러나 사실상 러시아의 조종을 받는 반군이 도발을 멈추지 않는 등 휴전이행 노력이 미흡하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대러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현재 진행 중인 농산물 수입 금지에 이어 서방산 자동차·의류 금수를 보복조치로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유럽 국가의 주력산업에 칼날을 들이댐으로써 경제를 볼모로 한 벼랑 끝 대결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 러시아는 30%에 이르는 유럽의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무기 삼아 "이번 겨울에 맞춰 가스관 밸브를 잠글 수 있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테러조직으로 떠오른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를 놓고서도 미국과 러시아 간 시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전날 내놓은 IS 격퇴 전략 및 여기에 포함된 시리아 공습에 러시아가 반대하고 나선 것.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의 우방국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이뤄진 오바마의 발표는 도발행위이자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이 같은 지정학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미·러는 각각의 군사·경제 이해관계를 적극 활용해 자기 세력을 규합·확대해나가고 있으며 이는 과거 냉전시절의 자본·공산주의 간 진영대결을 방불케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이라크 사태 등을 놓고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앞세워 군사안보를 강화하는 한편 EU 등 전통적 우방·동맹국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과거 등거리 외교를 벌여온 중국과 최근 경제·군사협력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국가를 든든한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앞서 11일 진행된 중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가스관을 비롯해 고속철, 대형 여객기, 헬리콥터 등 전방위 분야의 대형 프로젝트들에 대한 공조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독일마셜펀드의 캐런 돈프리드 의장은 도이치벨레와의 인터뷰에서 "포스트 냉전 시대의 새 질서 형성에 러시아가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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