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장에서 한중일 3국의 석유 수요는 하루 1억6,300만배럴(2011년 기준)로 아시아 수요의 84.8%, 세계 전체의 19%를 차지한다. 석유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지만 이 지역 오일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의 동북아 수출물량 비중은 지난 2006년 18.4%에서 2011년 9.1%로 반 토막 났다. 싱가포르 하나만으로는 동북아 오일 수요를 감당하기가 벅차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일본 오키나와 저장시설을, 알제리·노르웨이 등은 우리 석유공사의 국제공동비축분을 활용하는 등 물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시설 확보 경쟁은 불꽃을 튀긴다. 우리나라가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에 사활을 거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북아 중심지로서 좋은 입지를 갖춘 우리나라가 에너지 물류 및 거래 중심 시장으로 발전하려면 규제완화 등을 통해 글로벌 정유업체 입주 등을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만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천혜 입지, 동북아 허브 잠재력 충분=동북아 오일허브사업은 오는 2025년까지 울산과 여수에 3,660만배럴 규모의 석유저장시설과 국제석유거래소를 만들어 미국·유럽·싱가포르에 이은 세계 4대 오일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게 뼈대다. 이미 여수비축기지 구축은 마무리돼 지난 2013년 상업운영에 들어갔다. 여수기지의 탱크에는 총 수용 가능한 용량의 50~60% 정도가 차 있는 상태로 임대율(민간업체 대여율)은 91%에 육박한다. 총 4대의 유조선이 한꺼번에 정박해 원유를 넣고 뺄 수 있는 부두시설도 갖췄다. 현재는 사업 2단계인 울산 남·북항사업이 추진 중인데 총 2,840만배럴의 상업용 저장시설이 들어서면 석유비축 요충지로서 얼개가 완성된다. 정부는 향후 보험·파생상품 같은 오일금융 거래까지 할 계획이다. 여수기지 운영을 담당하는 오일허브코리아의 나용철 운영계획팀장은 "지난해 유가가 떨어지면서 시세차익을 남기려는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기지 탱크 대여를 위해 입찰공고를 통해 대여사를 정하기도 했다"며 "오일허브로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국·일본보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항만의 수심이 얕아 무거운 중량의 유조선이 정박하기 어렵고 일본은 잦은 자연재해 탓에 오일을 장기 보관하기에 부적합하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운임·정제비·항만비 등이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단위 공장당 일일 정제능력도 60만8,000배럴로 일본(16만7,000배럴)의 3.6배나 되는 등 우리나라의 객관적 여건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잘만 하면 오는 2025년 석유거래는 연간 25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석유제품의 혼합제조 허용 등 규제완화 절실=동북아 오일허브 성공을 위한 과제도 많다. 우선 국회에 장기 계류 중인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대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 현재는 오직 석유정제업자에 한해 수출목적의 혼합제조(블렌딩)만 허용되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제석유거래사업자도 보세구역에서 자유로운 블렌딩이 가능해진다.
석유거래를 주도할 트레이더·금융기관 등에 유리한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석유거래 관련 외국환거래 신고의무 완화, 외국인학교 설립 등이 들어간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동북아 오일허브가 연착륙하려면 금융시스템 정비와 함께 법과 규제를 푸는 등 소프트웨어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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