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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깨져야 산다
입력1999-04-25 00:00:00
수정
1999.04.25 00:00:00
춘계 노동공세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노조가 구조조정을 거부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노동계 파업사태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대우조선의 해외매각 계획에 항의하여 대우조선 노조가 지난 20일 전격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대우그룹 노조가 동조파업을 벌였다. 국내 최대노조인 한국통신 노조·부산지하철 노조·대덕단지의 전국과학기술 노조도 파업돌입을 예고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민주노총은 개별노조의 파업을 워밍업 삼아 5월 전국적인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노동계의 춘투에 한총련 등 대학생들이 대거 합류하여 노학연대의 양상까지 띠고 있다.노동계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임금삭감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단체와 언론은 불법파업을 중단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고질적인 불법파업에는 이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기류가 있는가 하면 노동계와 정부가 대화와 양보를 통해 타협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정부는 구조조정 자체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다른 두 가지는 협상의 여지가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노동계는 구조조정 자체도 협상의 대상으로 끌어오고 다른 두 가지에서 많은것을 얻어내기 위해 파업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노조파업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대통령이 경고하였다. 여차하면 노정(勞政)간에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고 겨우 회복단계에 접어든 경제가 크게 휘청거릴 수도 있다.
어렵게 꼬여 있는 노사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현체제의 노조도 살리고 친(親)노동정권의 이미지도 살리면서 구조조정을 완수하는 윈윈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읍참마속으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정면돌파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IMF관리체제를 불러들인 경제위기의 기본원인은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이요, 그 주인공은 물론 정부와 재벌이다. 정부와 재벌의 권력 농단에 맞서 싸운 노동계는 민주화의 견인세력이었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조와 재벌부문 노조는 그동안의 성장과정이 험난했던 것에 비례하여 어느덧 전투적인 반개혁세력으로 바뀌었다. 200만에 가까운 실업자가 있는데도 우리 임금은 깎을 수 없고 다른 부문이 울며 겨자먹기로 구조조정을 하든 말든 우리만은 구조조정을 못하겠다고 억지를 부르는 기득권세력이 된 것이다.
공공부문과 재벌부문의 노조원들은 영세 중소기업이나 하청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 비해 그동안의 거품경제하에서 혜택을 누려온 것이 사실이다. 파업이 전체 근로자 계층의 생존권 투쟁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정치투쟁의 성격이 더 크다.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완고한 집단이기주의는 호소나 경고로 극복되지 않는다. 이는 껍질을 깨는 아픔을 통해서만 극복된다. 영국의 대처 정부는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강성노조와 정면 대결하여 노조를 순치시켰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도 불법파업에 참여한 항공관제사를 모조리 해고시킴으로써 노동규율을 세웠다. 불법파업을 응징하는 이런 통과의례를 최소한 한번은 거쳐야 공공부문 노조와 재벌부문 노조의 반개혁성이 치유된다.
정부는 지난해의 현대자동차 노사분규 때 이런 통과의례를 치렀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올해 봄으로 이월된 것이다. 이제라도 정면돌파의 큰길을 걸어가야 한다. 경기회복세가 꺾일 것을 두려워하여, 혹은 고실업에 따른 사회불안이나 노학연대를 염려하여 원칙없는 타협을 꾀해서는 안된다. 미봉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엄정한 법치로 정면 돌파하면 노동운동을 정치권 진출의 교두보로 생각하는 노동운동가들에게 정치가로 변신할 기회를 앞당겨 제공한다. 정치에 뜻이 없는 일반노동자들에게는 불법파업의 기회비용과 우리 경제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조가 활성화된 지 12년이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노조전임자가 조합기금이 아닌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같은 경영권의 남용 못지 않게 부끄러운 일이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난센스다. 옛 재벌체제를 혁파해야 하듯이 스스로 크기를 거부하면서 터무니없이 경직적인 노조체제는 혁파돼야 한다. 이것이 다가오는 21세기에 협력적 노사관계를 뿌리내리는 길이다. 이를 위해 일반국민은 일시적인 불편과 괴로움을 의연하게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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