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미만 소액 자금조달은 증권신고서 제출의무도 없어 악용
경기도 분당시에 사는 송일준(가명ㆍ41)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1년 넘게 투자해오던 씨모텍이 최근 감사의견 거절로 퇴출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고생하며 모은 쌈짓돈 5,000만원에 증권사로부터 2,000만원을 주식담보대출 받아 총 7,000만원을 투자했지만 투자한 회사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며 수익이란 희망은 대규모 손실이라는 절망적 현실로 변했다.
송씨는 “2010년 8월부터 주가가 오르자 조금씩 투자하다 지난 1월에는 지금이 바닥이겠지 하는 생각에 주주배정 후 일반공모 유상증자에도 참여했다”면서 “요즘은 손실은 둘째치고 증권사에서 대출받은 2,000만원을 갚을 길이 막막해 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호소했다.
부실기업들이 회사 존폐의 기로에서 투자자들에게는 위험상황을 알리지 않고 자금 조달에 나선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부도덕한 자금조달에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까지 가세하고 있어서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2010년 감사보고서상 퇴출 사유가 발생한 기업 22개사 중 6곳이 올해 들어 주주나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달한 자금 규모는 330억여원에 이른다. 여기에 대한해운이 회생절차 개시 신청 전 실시한 유상증자 금액(866억원)과 비상장사인 LIG건설이 기업회생절차 신청 전 3개월동안 발행한 기업어음(CP) 자금(654억원)을 더하면 투자자들이 입게 될 피해액은 1,700억원을 웃돈다.
투자자들은 “돈은 악덕 기업들이 챙기고 손해는 불쌍한 서민들이 안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 투자자는 한 주식관련 사이트 게시판에서 “더 이상 개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도 문제지만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과정에서 주관사의 기업 실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금융감독당국의 감독도 부실한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의 경우 2~3일 동안 간단한 기업실사를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대부분의 IB 부문 직원들이 계약직으로 대형 증권사 이직이나 연말 인센티브를 위해 무리하게 실적 올리기식 기업실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코스닥시장 상장사 IR 담당자는 “증권사들의 기업실사가 ‘보여 주기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부 증권사들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류로만 실사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권사 IB 관계자는 “기업실사는 물론 금융감독당국의 증권신고서 승인도 한층 까다롭게 해야 한다”면서 “수 차례 정정 명명이 있긴 했지만 적자투성이로 감사의견 거절까지 당한 씨모텍의 증권신고서가 어떻게 승인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부도덕한 기업들이 자금조달 수단의 하나로 악용하는 10억원 미만 소액 자금조달에 대해서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규모 유상증자나 CB, BW 발행이 부실기업의 급한 자금 마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억원 미만의 소액 유상증자나 CB, BW의 발행은 증권신고서 제출의무가 없다.
한 코스닥시장 상장사 기업설명(IR) 담당자는 “부실기업들이 투자자 눈속임용으로 소규모 유상증자나 CB, BW 발행을 해온 지 오래”라면서 “이들이 제3자배정 방식으로 미리 주식을 받을 투자자를 정해놓고 자금을 조달해 급한 자금을 융통하거나 이를 통해 회사에 자금이 제대로 융통되고 있다는 식으로 투자자들을 현혹시킬 수 있어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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