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틀 바꿔라] 2부 울타리 밖의 경쟁자를 살펴라 글로벌 경쟁시대에 아직도 '우물안 싸움'"한국노조는두렵다" 對韓투자협상조차꺼려'노동자천국' 불리던 유럽도 근로시간연장등선진국노사, 경제성장·실업해소위해 손잡아 지난 1월 한 유럽기업을 찾은 경기도 노사정 투자유치단은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한국의 노조는 두렵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루돌프 콜롬 보쉬 이사의 발언은 한국의 강성 노동운동 기류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달라진 노사관계를 보여주겠다고 투자유치단에 참여한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의장은 “노조를 보는 눈이 안 좋아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글로벌 경제전쟁시대를 맞아 한국의 노동운동도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막강한 외국업체와 맞서 싸우는데 노와 사가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조는 두려움의 대상=경기도 투자유치단이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도 한국의 노조는 투자유치의 발목을 잡았다. GSK의 인플루엔자 백신 부문 생산기지와 R&D센터를 경기도에 유치해 한국의 백신연구 부문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투자유치단의 바람은 협상을 시작한 순간 무너졌다. 장 스테파니 GSK 회장은 “한국은 최근 임금도 많이 올랐고 노조도 강성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로선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노조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GSK 측은 벨기에 브뤼셀로 함께 온 이화수 의장을 아예 협상테이블에 초청도 하지 않았다. ◇우물 밖을 보자=글로벌 경영과 고용 없는 성장은 지구촌 기업 경영과 노동관행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딜레마는 노와 사를 떠난 공통과제이다. 하지만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에 몰리고 있는 선진국 노사는 이미 일자리 창출과 실업난 해소에 마음을 모으고 손을 맞잡고 있다. 파업이 일상적이던 유럽의 강성 노조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성장의 기반을 다시 만들고 있다.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순방 때 수행했던 이수영 경총 회장은 당시 독일 에너지화학노조(IG BCE) 허버트 슈몰츠 위원장 등 노조 지도자와 만난 후 “유럽통합 이후의 노동운동 변화를 확연히 느꼈다”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의 천국’이라고까지 불리던 프랑스ㆍ독일 등은 실업률이 급격하게 상승하며 강도 높은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 프랑스는 주35시간제가 고용 창출에 별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주35시간제를 사실상 포기하고 노사 합의로 주48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연장했다. 노ㆍ사ㆍ정 협력으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만든 나라는 아일랜드. 지난 87년 노ㆍ사ㆍ정ㆍ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사회협약을 체결한 뒤 1인당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아일랜드의 사례는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10년째 국민소득 1만달러의 문턱에서 강성 노조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 경제가 배워야 할 부문도 많다. ◇변해야 산다=지난 17일 울산 SK콤플렉스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쇠파이프에 물대포, 거품대포까지 시간을 거꾸로 돌려 80년대로 되돌아간 듯 했다. TV로 시위현장을 봤다는 한 외국계 기업 CEO는 “3개월의 파업으로 철수하려는 본사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 다?신뢰를 얻는데 3년이 걸렸다”며 “방송화면을 모니터링한 본사에서 어떤 연락을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투쟁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변해야 한다. 노조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협력자의 관계로 바뀌지 않는다면 산업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 또한 약화되고 이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아가는 부메랑이 된다. 올들어 무분규 임금협상 타협, 민주노총의 대화 참여 등으로 노사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듯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일부 강성노조의 ‘밀어붙이기식’ 투쟁이 나타나며 예년의 진통과 대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여기다 기아차와 항운노조 간부의 채용비리, 민주노총내 강ㆍ온파간 난투극등은 노동운동 자체의 위기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을 미국기업인들에게 소개할 때 가장 먼저 강조하는 장점이 우수한 인력인데 우수한 인력이 모인 노조가 외국기업에게는 한국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윌리엄 오벌린 전 암참 회장의 말을 한국의 노동계가 다시 한번 곱씹어야 한다. /특별취재팀 정상범차장(팀장)·이진우·한동수·김호정·민병권·김상용기자 ssang@sed.co.kr 입력시간 : 2005/05/26 17:01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