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4월 17일 밤 10시 서울 홍대 인근 주점. 종이 울리자 '이슬테이너'라고 불리는 게임 도우미가 요란하게 등장했다. 이슬테이너는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주객들과 이슬 게임, 슬이 술술, 소원 대나무 등 독특한 게임과 이벤트로 흥을 돋웠다. "참이슬 콜?" 이슬테이너의 전체 건배 제의에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슬이 들어간다, 슬↗슬슬↘슬슬↗"
기자가 다녀온 홍대 앞 하이트진로 '이슬포차' 팝업스토어는 마치 대학생들의 동아리 모임 술자리를 연상케 했다. 이슬테이너를 따라 이벤트를 즐기다 보면 안면이 없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끼어서도 스스럼없이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슬포차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이슬프레소, 아이슬 칵테일, 차조기 모히토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밌는 메뉴와 술 뽑기 기계, 카지노 이슬칩 등의 소품도 눈길을 끌었다. 재밌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진화하는 팝업스토어
팝업스토어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팝업스토어들은 임시 매장이란 점을 제외하곤 일반 매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개성 넘치는 이벤트들로 무장한 팝업스토어들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임시 매장을 뜻한다. 인터넷 팝업창처럼 잠시만 문을 열었다 사라진다고 해서 팝업(Pop-up)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팝업스토어는 위에서 예로 든 하이트진로의 '이슬포차(4월 10일 ~ 5월 17일)'와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아디다스의 '홀 오브 페임(Hall of Fame·명예의 전당, 2월 26일 ~ 4월 19일)'이었다. 제조사들은 보통 특정 상품의 소비자 반응 조사나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하지만 이슬포차와 홀 오브 페임은 다소 독특한 목적으로 기획돼 눈길을 끌었다.
'직접' 전달하는 브랜드 이미지
이슬포차는 '참이슬(하이트진로의 소주 브랜드 이름)'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기획됐다. 하이트진로는 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참이슬의 홍보 모델로 내세웠지만, 참이슬의 브랜드 이미지는 항상 '아저씨들이 많이 찾는 우중충한 술'이어서 고민이 많았다. 젊은층은 '돈이 궁할 때 마지못해 먹는 술'로 참이슬을 생각했다. 하이트진로는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소비자들에게 '직접' 젊고 유쾌한 이미지를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이슬포차 주점 관계자는 말한다. "소주라는 주류 자체가 지닌 이미지가 있다 보니 미디어 광고만으론 참이슬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어필하기로 했습니다. 젊음의 상징인 이곳 홍대 거리에서 밝고 재밌는 이미지로 젊은이들을 만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실제로 효과가 있더라고요. 지난해 7월 시즌1 행사 이후 20~30대 소비자 비중이 꽤 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지도 개선됐고요. 그래서 올해 시즌2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영감'을 공유하다
아디다스의 홀 오브 페임 팝업스토어는 좀 더 독특한 이유로 기획됐다. 홀 오브 페임 Hall of Fame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명예의 전당'이라는 뜻으로, 홀 오브 페임 팝업스토어는 '슈퍼스타' 컬렉션 출시 45주년을 맞아 그 의미와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종석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과장은 말한다. "슈퍼스타는 운동선수들을 비롯해 힙합 음악가 등 예술계 종사자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브랜드입니다. 큰 영향을 끼쳤고 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도 가지고 있죠. 홀 오브 페임 팝업스토어는 슈퍼스타에 대한 히스토리를 대중에게 알리고 또 그 영감을 공유하고 싶어 만들어졌습니다."
목적이 남다르다 보니 매장 위치나 구성 역시 독특하다. 홀 오브 페임 팝업스토어는 가로수길 중심 상가에 입점한 것이 아니라 골목 안쪽 외진 건물에 통으로 들어서 있다. 어지럽게 그래피티 그림을 그려놓은 매장 외관은 뉴욕 빈민가의 폐건물을 연상시킨다. 김종석 과장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 체크나 수익이 목적이 아닌 만큼 매장의 위치나 분위기도 조금 생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고객인 이재광(21·대학생) 씨는 "다른 매장에선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라며 "포토존 등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마치 유원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독특한 팝업스토어들
특정 연예인을 형상화한 의류나 장신구를 파는 '연예인 팝업스토어'도 있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1월 서울 소공동 본점에 'SM타운 팝업스토어'를 열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국내 연예인 팝업스토어 1호였다. 2013년 당시만 해도 연예인 팝업스토어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는 곳이 많았지만, SM타운 팝업스토어가 대히트를 치면서 지금은 많은 곳에서 연예인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SM타운 팝업스토어는 당시 12일간의 운영 기간 동안 6억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려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지금은 아예 롯데 영플라자에 정식 매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재밌는 먹거리 팝업스토어들도 많다. 백화점들은 매장 구성에 변화를 주거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역 맛집이나 지방의 소규모 프렌차이즈 업체를 팝업스토어로 유치하기도 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2월 백화점 최대 성수기를 맞아 고객 유치의 일환으로 '프랑스에 다녀온 붕어빵' '나폴레옹 과자점' '고선생 고로케' 등 다양한 맛집 팝업스토어를 운영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황혜정 현대백화점 공산품팀 대리는 "맛집 팝업스토어는 최근 백화점 업계에서 집객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맛집 팝업스토어 때문에 일부러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꼽은 팝업스토어 장점]
취재 중 만난 소비자 대부분은 기업들의 팝업스토어 운영에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색적인 공간인데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재미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으로 꼽혔다. 일반 매장과 달리 팝업스토어는 브랜드 매니저나 기업 관계자가 직접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소비자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일부 고객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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