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벤처 붐이 일고 있다. 창조경제의 근간이라는 평가 속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젊은 창업가들이 야심찬 도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도전이 곧 성공으로 이어지라는 법은 없다. 과거 벤처거품이 꺼지며 우후죽순 사라져간 1세대 선배 벤처기업들이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대기업 역시 벤처 육성에 대한 의지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창조경제의 불길이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벤처 성공신화가 연이어 탄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2014년 11월,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정부의 모토는 창조경제다. 정부가 주창한 창조경제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창조와 혁신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및 시장 창출, 창조경제 글로벌 리더십 강화, 창의성이 존중되고 마음껏 발현되는 사회구현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창조경제에 대한 논란은 현 정부 출범 이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창조경제인가’라는 본질적 논란도 여전하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현 정부가 생각하는 창조경제의 주인공은 바로 전도유망한 벤처, 스타트업(StartUp)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 IT업계에는 1차 벤처 붐이 일었다. 시작은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은 IT벤처의 비약적인 성장, 이른바 ‘닷컴 열풍’을 토대로 경제 전반에 활황기를 맞고 있었다. 이를 벤치마킹한 당시 김대중 정부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펼쳤다. 1996년 코스닥 시장을 개설해 벤처기업들이 원활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고 대기업과의 교류를 위한 기술거래소를 만들어 벤처를 지원했다. 외국 벤처투자사들도 국내 시장에 진입해 막대한 자금을 풀기 시작했다.
벤처 붐은 2000년 절정에 달했다. 그해에만 4,000여 개의 벤처가 탄생했다.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는 넘쳐나는 벤처기업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하지만 이 같은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내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국내 벤처시장에서도 ‘거품’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벤처 붐을 타고 설립된 수많은 벤처기업들은 한순간에 늘어난 빚과 기업가치 폭락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갔다.
현 정부의 벤처정책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은 당시 1차 벤처 거품 사태와 묘하게 이미지가 겹쳐진다. 벤처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넘쳐나는 투자자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최첨단 기술의 탄생은 긍정과 부정의 시선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종합 통계서비스 ‘벤처인’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2월 기준 국내 스타트업의 수는 2만 9,664개다. 불과 한 달 전인 11월과 비교하면 100여 개의 회사가 새롭게 등장한 셈이다. 앞으로도 스타트업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글로벌 경기의 저성장 기조를 탈출하기 위한 해답은 창조경제이고, 이를 이뤄낼 수 있는 열쇠는 스타트업이 쥐고 있다고 강조한다. 박 대통령은 최근 공식 석상에서 “창조경제와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혁신과 융복합을 가로막는 규제가 있다면 강력하게 혁파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규제 철폐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대표적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은 규제 철폐와 대대적인 창업 지원을 통한 스타트업의 부흥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 투자사와 벤처캐피털(VC)에 의존해왔던 기존의 벤처 투자에 오는 2017년까지 3조 9,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우선 스타트업 창업자 1만 3,000명 육성을 위해 1조 600억 원을 지원한다. 초중고 비즈쿨(Biz-Cool, 비즈니스와 스쿨의 합성어로 청소년의 창업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마련하는 창업교육 프로그램) 확대를 통해 창업 저변을 확대하고 청년 창업 및 엔젤투자펀드 지원, 여성 벤처펀드도 조성할 방침이다. 또 대학별 창업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2,800억 원을 투자, 창업 인프라 확대에도 나서게 된다.
또 코스닥 시장을 거래소에서 완전히 분리해 벤처기업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실패한 창업자에게도 사업성 등의 평가를 통해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약 8,0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 밖에도 규제를 만들면 그만큼의 기존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규제총량제’를 실시하고, 기업활동을 억눌렀던 각종 규제의 재검토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뿐 아니라 대기업도 벤처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화 전 과정을 지원하는 ‘C-Lab(Creative Lab)’을 운영한다. C-Lab에 참여한 우수 팀에겐 초기 지원금 2,000만 원, 사업화 지원금 최대 2억 8,000만 원, 졸업 지원금 최대 2억 원 등을 지원하고,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내 사무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 1대1 밀착 멘토링, 국내외 투자자와의 연계 등 네트워킹의 자리도 마련해준다.
SK텔레콤은 전 주기적 창업지원 프로그램 ‘브라보 리스타트(BRAVO Restart)’, 현대차는 사내 벤처육성 조직 ‘벤처플라자’를 운영해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롯데마트는 자사의 유통 인프라를 기반으로 벤처 창업기업의 글로벌 해외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중소기업 전용상품관인 ‘K-HIT Plaza’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중국 북경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선 정부와 기업이 발 벗고 나서 ‘제2의 벤처 붐’ 조성을 북돋우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젊은 창업가들의 도전정신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라면, 도전이라는 창업정신은 온전히 젊은 창업가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국내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말한다. “우리나라 예비 창업가들은 실패의 공포 때문에 안정적인 사업을 지향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창업가 연대보증 등 지원방안을 통해 실패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건 정부와 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예비창업자들도 기업가정신 교육 등 다양한 자극을 통해 도전적 사고를 고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