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자로는 사고 발생 전까지 미국에서 소비되는 몰리브덴 99, 약칭 Mo-99 방사성 동위원소의 3분의 2를 공급해 왔기 때문이다. 방사성 동위원소란 어떤 원소의 동위원소 가운데 방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알기 위해서는 동위원소부터 이해해야 한다. 지난 20세기 초 영국의 화학자 F. 소디는 질량수가 다른 같은 종류의 원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 원소들이 주기율표에서 같은 원자번호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동위원소라고 명명했다.
일반적으로 원자 또는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류는 질량수와 원자번호에 의해 구별된다. 질량수와 원자번호가 지정된 특정한 원자 또는 원자핵은 하나의 동위원소를 형성하는데, 이를 핵종(核種)이라고 한다. 핵종은 현재까지 1,370종이 발견됐다.
1,370종의 핵종 가운데 자연계에 일정한 빈도로 존재하는 것은 286종이며, 이 중에서도 방사선을 방출해 안정적으로 붕괴하는 이른바 방사성 동위원소는 14종이 있다. 하지만 1930년대 핵반응을 통해 인공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수많은 종류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핵반응을 일으키는 데는 주로 원자로나 가속기가 이용된다. 그런데 원자로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생산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방사성 동위원소는 이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Mo-99 방사성 동위원소는 매년 1,600만 건의 의료 진단에 쓰이는데, 지난 7월부터 공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전체의 3분의 2를 공급하던 초크 리버 원자로가 가동을 중단한데 이어 나머지 3분의 1을 공급하던 네덜란드의 원자로 역시 수리 때문에 한동안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수만 명의 환자가 매일 방사선 영상기술을 사용해 심장, 폐, 콩팥, 뼈, 뇌 등 여러 장기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의사들은 방사선 동위원소를 환자의 몸에 넣은 후 방사선에 민감한 카메라로 응혈, 종양 등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발작을 진단한다.
Mo-99 방사성 동위원소는 붕괴되면서 테크네튬-99m이라는 딸 원소를 방출하는데, 이 딸 원소의 힘은 매우 강해 카메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동위원소 가운데 물리학적으로 불안한 원소는 알파입자, 베타입자, 또는 감마입자를 내놓고 붕괴해 안정적인 원소로 바뀐다. 이 때 붕괴 전의 원소를 모 원소, 붕괴 뒤의 원소를 딸 원소라고 부른다.
딸 원소인 테크네튬-99m의 강한 힘 때문에 80%의 방사선 이용 의료 진단에 Mo-99 방사성 동위원소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테크네튬- 99m은 반감기가 6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면 못 쓴다. Mo-99 방사성 동위원소 역시 보존기한이 며칠에 불과하다.
Mo-99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던 원자로 2개가 작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Mo- 99 방사성 동위원소는 아주 귀해졌다. 미국 원자력의학회장인 마이클 그래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상시의 10% 밖에 Mo-99 방사성 동위원소를 보급 받지 못합니다. 이대로 가면 미국 전역의 방사선 이용 의료 진단을 연기 또는 취소해야 합니다."
현재 의사들은 비효율적인 진단 방식, 또는 환자를 더욱 강한 방사선에 노출시키는 진단 방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암세포 전이 진단 같은 것은 Mo-99 방사성 동위원소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다리던가 아니면 진단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현재 5대의 원자로가 전 세계 Mo-99 방사성 동위원소 가운데 95%를 생산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 원자로는 이미 노후화돼 가고 있다. 실제 초크 리버 원자로는 이미 제작된 지 52년이나 됐다.
8월에야 재가동을 시작한 네덜란드 원자로는 운용한지 47년이 지났다.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원자로의 운용기간 역시 각각 42년, 43년, 47년이다. 일반적으로 원자로의 평균 수명은 40~50년이다.
지난 1996년 캐나다는 세계 Mo-99 방사성 동위원소 수요를 100% 충족시킬 수 있는 메이플(MAPLE)이라는 2대의 원자로를 건설, 노후 원자로를 모두 교체하려고 했다. 여타 원자로 제작업체들은 메이플의 최대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방사성 동위원소 제조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플 엔지니어들은 지난 봄 이미 프로젝트 예산의 수배에 달하는 6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원자로에서 여러 가지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는 이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중지했다.
오하이오 주에 있는 케터링 메디컬센터의 수석 원자력 약제사인 스티브 매트뮬러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욕이 나올 만큼 실망스러운 순간이었죠. 20년 전이라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원자로가 20년이나 노후화 됐습니다."
메이플 프로젝트의 실패로 인해 2가지의 장기대책이 실행됐다. 원자력 회사인 밥콕 앤 윌콕스는 미국 내 수요량의 반을 충당할 수 있는 Mo-99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올 여름 매사추세츠 주의 미 하원의원 에드워드 마키는 미국 내 Mo-99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위한 1억6,300만 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제안했다. 이 중 일부는 미주리 대학의 실험용 원자로 개조에 투입, 미국 내 수요의 반을 충당하는데 쓰일 것이다.
하지만 2가지 대책 가운데 2012년까지 완료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없다. 네덜란드는 초크 리버 원자로가 조만간 복구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올 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6개월간의 보수유지 기간을 봄으로 미루었다.
하지만 수리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 캐나다 정부는 초크 리버 원자로를 계속 가동중지 상태로 두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2개의 대형 Mo-99 방사성 동위원소 공급 원자로가 가동을 중지하자 세계는 Mo-99 방사성 동위원소 부족에 처하게 됐다.
Mo-99 방사성 동위원소 공급이 달리게 되자 방사선 진단법이 나오기 이전에 쓰이던, 즉 위험이 큰 추측 진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아이오와 대학병원 및 클리닉의 수석 원자력 약제사인 짐 폰토는 올 여름 방사성 동위원소 부족으로 환자들이 진단을 받으려면 1주일이나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어떤 환자는 암의 진행 상황을 측정하고 수술 범위를 최소화할 수 있는 테크네튬- 99m 진단을 일부러 건너뛰기도 했다. 진단까지 1주일이나 기다릴 수 없어 바로 수술실로 직행한 것이다. 폰토는 이런 상황이 걱정스럽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부족하면 암이 얼마나 퍼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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