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면서 우주비행사들은 자기들이 정말로 우주 공간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입주자들처럼 새로 산 집이 광고와 일부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기야 울화통을 터트리는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이 사람들은 지구 상공 370km 높이에서 앞으로 넉 달 동안 꼼짝없이 갇혀 살아야 하니 오죽하겠는가. 바람을 쐬러 뒷마당으로 나갈 수도 없다. 새로운 우주정거장 알파에서 잘 지내려면 비좁은 공간에서 둥둥 떠다니는 물건들 틈바구니에서 생활하는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
우주탐사 제1팀의 승무원-대장 윌리엄 셰퍼드와 두 우주비행사 세르게이 크리칼레프, 유리 기드젠코-은 이틀 동안 비행해 작년 11월 이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맨 먼저 불을 켜는 법과 화장실 사용법부터 배워야 했다. 크리칼레프는 러시아가 만든 자리야 모듈에 유니티 모듈을 연결하는 임무를 띠고 미리 와 있었다. 그는 자리야에서 생활하는 것이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12m의 버스만한 크기는 마치 보일러실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다.
자리야는 훗날 창고와 보조 연료저장실로 쓰일 예정이다. 지금 숙소로 쓰는 것은 작년 7월부터 궤도 비행에 들어간 비교적 생활 여건이 나은 즈베즈다 기계실. 버스만한 크기의 즈베즈다는 태양전지 날개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즈베즈다는 시끄럽지도 않았고 악취가 진동하지도 않았다. 공기 정화 시스템은 원활하게 가동중이며 소음은 해군 함정 수준이라고 셰퍼드 대장은 관제국 요원들에게 전해왔다. 실내 온도도 쾌적하다. 그 점을 입증하듯 셰퍼드 대장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운신할 폭은 여전히 좁다. 처음 한 달 동안 유나이티는 도무지 제 구실을 못했다. 태양전지가 난방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 작년 12월에 우주왕복선 인데버호 승무원들이 도착하면서 생활 여건은 개선되었다.
인데버가 알파와 닷새 동안 도킹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우주비행사 조 태너와 카를로스 노리에가는 세 번에 걸쳐 우주유영을 하여 길이가 73m나 되는 거대한 태양전지 날개를 설치했다. 덕분에 알파는 60킬로와트의 전력을 추가로 얻었다. 태양전지를 가설하는 동안 감전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플라즈마 접촉기라는 새로운 장비가 제 성능을 발휘해준 덕분에 기우로 끝났다. 서류가방 크기만한 플라즈마 접촉기는 크세논 가스를 발사해 정전기를 방지한다. 태양날개 하나가 뻑뻑해서 말을 안 듣자 우주비행사들은 예정에 없던 수리 작업을 이틀에 걸쳐 해내면서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적응력이 한층 높아졌음을 입증했다.
우주유영을 하는 동안은 두 우주선의 실내 압력은 달랐다. 그러나 일단 우주유영이 끝나자 인데버와 알파는 압력을 동일하게 만들었고 승무원들은 화기애애하게 집들이를 했다. 종을 울리는 전통적인 해군식 환영을 받으며 인데버 승무원들은 알파로 들어갔다.
인데버 호는 보급 물자를 가져왔고 고맙게도 쓰레기까지 지구로 실어간다. 즈베즈다에서는 공간 부족으로 모퉁이에서 쭈그리고 자야 했던 기드젠코는 새로운 침낭을 받았다. 이제 모든 게 갖추어 졌다. 셰퍼드 대장은 낮에도 유니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우주 생활에는 물론 장단점이 있다. 장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력이 없기 때문에 안에서 마음대로 떠다닐 수 있다. 각종 시설이 설치된 위치를 보고 방향 감각만 대강 잡을 수 있을 뿐,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마루도, 천장도, 벽도 똑같이 만질 수 있다. 가령 이메일 컴퓨터만 하더라도 지구에서는 천장이라고 부를 즈베즈다의 한쪽 끝에 거꾸로 놓여 있다. 세 사람은 이메일로 가족,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사실 지구에서도 장기 훈련을 받느라 일 년을 집 밖에서 살았으니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러나 우주 탐사 제1팀은 처음에는 통신 제약을 많이 겪었다. 알파가 러시아 위성 기지의 탐지권 안에 들어가야 했으므로 지상 관제국과 20분만 교신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다. 지난 1월부터는 미국의 휴스턴 기지가 통신 업무를 맡기 시작했으므로 3월 말부터는 NASA의 위성추적 데이터전송 시스템을 통해 24시간 교신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 맞은편엔, 그러니까‘우측 상단’에 셰퍼드가 짬짬이 못 쓰는 받침대, 여분의 금속, 각종 잡동사니를 동원하여 만든 군용 탁자가 있다.
세 사람은 여기서 식사를 하고 저녁이면 빙 둘러앉아 영화를 보거나 틈나는 대로 모스크바의 기지국과 채팅을 즐긴다. 돌아다니기도 너무 쉽다. 크리칼레프는 “힘이 너무 안 들어서 탈”이라고 엄살을 부린다. 칸막이벽을 손가락 하나로 튕기기만 해도 널찍한 즈베즈다의 통로를 활용할 수 있고 아무거나 손에 닿는 대로 살짝 만지기만 해도 바로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이런 자유를 누리는 만큼 대가도 만만찮다. 근육이 약해지고 뼈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운동은 알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다른 일이 없으면 보통 점심 먹기 전에 한 시간, 저녁 먹기 전에 한 시간씩 꼬박꼬박 운동한다. 그러나 처음 정착했을 때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따로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운동은 커녕 8시간도 못자고 13시간 동안 꼬박 일한 적도 있었다.
기드젠코는 지상 요원들한테 자주 잔소리를 퍼붓는다. “지구 사람들이 한 시간 걸린다고 한 일을 실제로 해보면 우리는 다섯 시간 걸린다.” 이런 것이 우주에서 생활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거쳐야 할 시행착오의 일부분이다.
작년 12월 말로 접어들면서 생활이 제자리를 잡았다. 인데버호가 가져온 러닝머신으로 한 사람이 최대 90분씩 격렬한 운동을 한다. 근육 약화와 골다공증을 조금이라도 이겨내려면 이런 힘든 운동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운동을 해도 우주 궤도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한 달에 1퍼센트에서 1.5퍼센트씩 골밀도(bone density)가 낮아진다.
하루에 기본적인 활동을 하는 데만도 엄청난 주의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꽉 짜여진 일과표는 없지만 그리니치 표준시로 오전 6시면 일어난다. 이후 약 40분은 ‘일과 준비 시간’이다. 이 시간엔 세수도 하고 옷도 입는다.
그 다음 45분 동안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신체의 각종 치수를 재어 지구 의료진에게 전송한다. 특히 종아리 굵기는 근육의 이상 유무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다. 신체 측정을 안 하는 날은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기지와 그 날의 일과를 협의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일만 하더라도 평상시보다 훨씬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보통 한 끼를 해결하는 데 90분의 시간을 배정한다. 그릇이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강력 테이프나 조임장치로 고정시켜야 한다. 냉장고(차가운 우유도 먹는다), 전자레인지도 있고 냉동고에는 야채, 육류심지어는 아이스크림까지 있다. 보통 아침상에 오르는 것은 스크램블 에그, 소시지, 오트밀, 와플, 오렌지주스, 커피 정도다.
그러나 꼭 미리 정해진 식단대로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기지에 보고해야 할 의무도 없다. 중력이 없는 공간이므로 한 동작 한 동작 용의주도하게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물이라도 엎질렀다간 그야말로 낭패다. 그러다보니 아주 간단한 요리를 장만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며 설거지는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셰퍼드, 크리칼레프, 기드젠코는 임무 수행이 전혀 따분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제 1팀의 승무원들에게 주어진 업무가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행성, 달, 별들에 대한 천체 관측 등 다양한 각종 과학기술 실험을 매일 진행하는 후임 승무원들의 임무보다 아무래도 단조로운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차기 승무원들은 지상 기지에서 촬영을 요청한 지역의 사진을 찍어 전송하게 될 것이라고 비행 총책임자 제프 핸리는 말한다.
이 사진은 나중에 분석되어 지구 자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스크바 기지에서는 15분에서 20분 사이의 현지 라디오 방송을 보내온다. 그들의 주임무는 집안의 마무리 공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재 승무원들은 인데버호가 가져온 하드웨어를 설치하거나 기존 장비를 수리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유니티의 전기 배선이 말썽을 부리더니 결국 수리가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는 시간에는 우주선 내부의 온도, 습도, 방사능 수치를 기록하고 알파의 궤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구레한 일을 한다.
주말에는 보통 쉰다. 빈둥거리거나 밀린 잠을 자고, 가족이랑 짧은 전화 통화를 하거나 즈베즈다에 있는 13개의 창을 통해 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지난 1월 말 알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데스티니 실험실이 우주왕복선에 실려와 승무원들은 더욱 바빠졌다. 우주정거장에 연결된 이 네 번째 모듈은 선반마다 다양한 과학실험장비가 설치되며 궁극적으로는 알파의 사령부와 지휘소 역할을 맡게 된다.
셰퍼드, 크라킬레프, 기드젠코는 우주정거장에 체류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4개월 남짓 머무는 것이 원래 일정이었지만 지상 기지에서 디스커버리 우주왕복선의 발사 로켓을 부득이 교체해야 할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3월 중순으로 임무 교대 시기가 늦춰졌다.
셰퍼드는 그 소식을 듣고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장기 체류를 각오하고 이곳에 왔다. 6개월 정도까지는 너끈히 버틸 수 있다. 마음의 준비는 돼 있다.”
데스티니에 더 많은 선반과 과학장비를 설치하는 궂은 일은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당초 협약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가 번갈아가면서 지휘와 인원 배치를 맡게 되어 있다. 따라서 데스티니에 장비를 가설하는 임무는 익스페디션 2호의 승무원들이 맡게 된다. 익스페디션 3호는 올해 6월 발사 한다. 인류는 우주에 새로운 집을 지었다. 입주 과정에서 다소의 시행착오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감수: 한국 항공대학교 장영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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