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오는 2003년까지 캘리포니아주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10분의 1은 전기 배터리를 달아야 한다고 못박은 이 법 앞에서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 유일한 대안은 ‘전기 자동차’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에 지정된 마감 시한이 채 3년도 남지 않은 지금, 최고의 대안은 오히려 내연 기관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1861년, 출장을 자주 다니는 영업사원 니콜라우스 아우구스트 오토가 발명한 내연기관이 연료를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둔갑, 그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매연 제어력까지 탁월해 로스앤젤레스의 대기가 안 좋은 날이면, 자동차 운전자가 마시는 공기보다 이 엔진이 내는 배기 가스가 오히려 더 깨끗할 정도라고.
“이제 내연 기관이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은 없어졌다”고 제너럴모터스사의 첨단엔진 개발이사 프리츠 인드라는 말한다.
이미 가솔린, 디젤 엔진의 대안으로 가솔린-전기 하이브리드 엔진, 완전 전기 엔진 등이 부상하고 있으며, 연료 전지가 거의 실용화 단계에 와 있긴 하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팔리는 1,500만대의 승용차에는 거의 모두 내연 엔진이 달려 있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새로운 초청정 고효율 내연 엔진은 앞으로 최소한 몇십 년 동안은 연료 소비와 공기의 질에 다른 첨단 엔진들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렇게 엔진의 기본 설계를 재검토하게 된 밑바탕에는 매연 배출을 규제하고자 하는 전 세계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국제 유가의 상승과 환경 오염을 고려,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이 거셌기 때문이다.
포드사 첨단 엔진 개발팀장 짐 클라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엔진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40년 동안 더 이상 손볼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발전해온 것처럼 보이는 이 내연 엔진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은 자못 놀랍게만 들릴 수밖에. 다양한 시스템의 장점을 한데로 엮은 것이 이러한 성과로 나타났다.
새로운 엔진의 성능과 구조는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최근 닛산은 캘리포니아주의 부분 무공해차량(PZEV) 규정에 맞춘 2001년형 센트라 CA 모델을 선보였다. PZEV는 15만 마일을 주행해도 매연의 배출이 지극히 낮은 차를‘부분’전기자동차로 간주하는 보완 규정이다. 2003년까지는 현재 요구되는 전기자동차의 60% 정도를 PZEV 차량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오염 배출 수준이 극히 낮으면 그 이상까지도 PZEV로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일반사람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감안해, 자동차 업체들은 부분 무공해 기준을 충족시키는 차량을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다. 최근 혼다는 PZEV의 성분을 가진 어코드 모델을 공개했다. 이 모델은 현재 승용차에 요구되는 매연 배출 기준보다 90퍼센트나 낮은 극저공해배출차량(SULEV) 기준을 통과했다.
연료 낭비가 가장 심해 ‘환경 무법자’라는 악명까지 얻고 있는 SUV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에도 연비가 향상된 엔진이 도입되고 있다. GM의 새로운 터보디젤은 연비를 약 20퍼센트나 끌어올려, GM에서 만든 가장 큰 트럭도 고속도로에서의 연비를 8.5㎞/ℓ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엔진의 발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장담하건대 앞으로 10년 내에 설계도면에 제시한 해묵은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할만한 획기적인 엔진들이 실용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
전기와 수압으로 움직이는 밸브, 가변 압축비, 새로운 연료 공급 시스템을 장착한 실험 엔진들은 벌써 시험 운행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아이디어의 상당수는 수십 년 동안 연구되어 온 것이다. 이 중엔 대량 생산을 목전에 두었다가 좌초된 것도 있지만, 지금은 발달된 전자제어기술 덕분에 개발 여건이 그전보다도 훨씬 좋아졌다.
연비가 유일한 문제라면 가장 유력한 해답은 디젤 엔진이다. GM의 인드라는 현재 유럽에서 팔리는 새 차의 30퍼센트가 디젤 엔진을 달았다고 말한다. 신형 디젤차는 연비도 뛰어나지만 리터당 가격이 3달러 이하이기 때문에 가솔린에 비해 가격 수준이 훨씬 낮다. 수요가 개발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인드라는 “신형 디젤차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너나 없이 터보엔진을 달았는데 훨씬 가볍고 조용하다”고 덧붙인다.
디젤 엔진이 연료에서 에너지를 끌어낼 때는 여러모로 유리하지만 여전히 불꽃 점화 방식인 가솔린 엔진에 비해 매연 배출량이 많다. 가솔린 엔진은 디젤 엔진에 비해 연료 사용의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무게가 더 가볍고 가격도 저렴하다. 유해한 부산물도 적게 배출된다.
클라크는 “이 장점들이 만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디젤 엔진은 더 깨끗해지고 가솔린 엔진은 연비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연료공급시스템에서는 이미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디젤 엔진과 대부분의 소형 가솔린 엔진은 작은 고압 펌프를 통해 연료가 분사되면 이것이 폭발해 엔진이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소형 디젤 엔진은 실린더 헤드에 연결된 작은 방으로 연료를 주입했다.
그러나 신형 엔진은 연료를 연소실로 직접 분사한다. 이렇게 하면 연비가 20퍼센트 향상된다. 연료 분사도 전자제어시스템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직접 분사 방식은 가솔린 엔진에서도 효과가 높은데, 공기보다 훨씬 적은 연료를 넣어 완전 연소되기 때문이다. 가솔린 린번 엔진(희박연소엔진)이라 불리는 이것은 이미 일본과 유럽 시장에 등장했다.
엔진에 하중이 크게 실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가벼운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희박연소로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차를 굴릴 수 있다. 이제껏 미국에 린번 엔진이 사실상 전무했던 이유는 희박연소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촉매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저유황유가 주로 쓰이고 있고 앞으로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저유황유를 쓰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름은 고유황유다(저유황유는 가격이 비싸고 새로운 정유 방식을 요구한다). 하지만 올 가을 혼다는 미국에서 파는 모든 기름을 쓸 수 있는 린번 엔진을 선보일 예정이다.
경트럭과 승용차보다는 완화된 매연 배출 기준을 적용 받는 중형 트럭도 새로운 디젤 엔진의 덕을 볼 수 있다. 올 가을에 선보일 3500 시리즈 픽업에 이어 타호, 서버번 같은 SUV에 장착될 GM의 듀러맥스 직접 분사식 디젤 엔진은 고속도로에서 동급 가솔린 엔진의 2배인 10.6㎞/ℓ에 가까운 연비를 자랑하는 이른바 ‘공동레일’엔진이다.
공동레일 분사 시스템에서는 공동의 보급 라인으로 모든 실린더에 고압 연료를 제공하기 때문에 연소 과정을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포드, GM 모두 자신들의 간판급 SUV와 트럭에 새로운 소형 V6 공동레일 직접 분사식 디젤 엔진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듀러맥스 디젤 엔진은 6,700cc급의 경우 3,100rpm에서 300마력의 힘을 내고 1,800rpm에서 520lb·ft의 회전력을 낸다. 각 실린더마다 푸시로드로 작동되는 4개의 밸브와 터보가 장착되어 있다. 유럽에서 나온 상당수의 신형 디젤 엔진도 비슷하지만 특히 듀러맥스 엔진은 공동레일 연료 분사 장치를 비롯한 이런 특성들 덕분에 가볍고 강력하며 연비가 뛰어난 엔진으로 등장했다.
얼마 전까지 엔진의 기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들은 고정돼 있었다. 실린더블록은 나사로 단단히 조여져 있었고 캠에 의해 작동하는 밸브는 크랭크축과 연동되어 개폐된다. 밸브의 개폐 시점과 압축비는 처음 엔진이 설계, 제작될 때부터 고정 불변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엔진에서는 이런 기능들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밸브의 개폐 시점은 엔진의 성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속과 저속에서 모두 부드럽게 달리고 큰 힘과 작은 힘을 요구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밸브가 정확한 순간에 열리고 닫혀야 한다. 밸브가 열리는 속도도 중요하다. 이제까지 차에 장착된 엔진들은 밸브의 타이밍을 바꾸는 복잡한 기계식 가변 캠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러나 새로운 엔진은 기계식 캠축을 아예 쓰지 않는다.
최근 인터내셔널 트럭 앤 엔진사는 유압을 이용하여 밸브를 여닫는 튼튼한 트럭 엔진을 공개했다. 최종 시험 단계에 있는 이 엔진은 캠축을 쓰지 않는 최초의 상용 엔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밸브가 닫힐 때의 충격으로 파손되는 문제점은 밸브를 최대한 부드럽고 빨리 닫히게 함으로써 해결했다고 한다.
엔진 부품을 공급하는 지멘스도 전자기력으로 움직이는 솔레노이드 밸브를 사용하는 엔진을 공개했다. 이 기술은 수십 년 전부터 연구되었는데 지멘스는 밸브가 닫힐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소프트웨어로 해결했다고 밝혔다.
조절 가능한 밸브의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대형 트럭의 경우에는 엔진의 펌프 동작을 역전시켜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공기와 연료의 비율, 질소산화물의 배출량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가솔린 엔진의 경우, 연료와 공기를 섞는 기화기의 조절 밸브를 아예 없앨 수 있고 밸브 발동장치도 필요없게 된다. 공기에 대한 저항이 없어져 출력도 증폭된다. 그러나 여전히 만만치 않은 기술상의 어려움이 남아있다. 전력 소모가 워낙 커서 42볼트의 전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브 자동차는 이보다 훨씬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엔진이 돌아가는 동안 압축비를 바꾸는 것이다. 사브는 최근 실린더블록 전체를 아예 비스듬히 기울이는 실험 엔진을 선보였다. 이 엔진은 하중이 적을 때 압축비를 자동으로 높여 연료 소비를 줄인다. 반면 힘을 내야 할 때는 압축비를 낮추고 공기의 유입량을 늘린다. 소형 엔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형 엔진 못지 않은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점화장치는 피스톤 상부를 점화 플러그의 한 전극으로 이용한다. 기존의 플러그를 쓰면 높은 전압 때문에 플러그의 끝이 부식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도 새로운 엔진의 연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정교한 밸브 조절, 직접 분사, 가변 압축비 기능은 필연적으로 생산 원가를 높이게 되지만 포드사의 클라크는 비용이 덜 드는 ‘묘책’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실린더당 제작비로 따지면 원가가 높아지므로 실린더의 수를 줄이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포드사는 4개 미만의 실린더로 8기통 못지 않은 힘과 부드러움을 낼 수 있는 차세대 엔진을 구상하고 있다.
이 새로운 엔진 기술 가운데 적어도 몇 가지는 올 가을 나올 신형차에 선보일 예정이다. 앞으로 5년 안에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엔진의 기본틀을 확 바꿀 것이다. 당초 내연 기관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연료로 값싼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이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단점은 앞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다. 섣부르게 내연 기관의 몰락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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