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는 지난해 10월 27일 전인미답이었던 ‘4000 선’을 돌파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걷어내는 서막을 열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3000 선을 넘어선 지 4개월 만이었다. 코스피가 22일 장중 5019.54까지 치솟으며 사상 처음으로 ‘꿈의 5000 선’을 찍고 한국 증시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데는 이후 채 석 달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경제신문이 이달 2일 ‘2026 증시대동제’에서 ‘오천피’를 목표로 제시한 지 3주 만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빠른 랠리가 이어졌음에도 당분간 강세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상승 엔진’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반도체를 출발점으로 자동차·원전·방산 등 다른 대형 주도주로 매수세가 이어진 ‘순환매 장세’다. 반도체주가 단기 조정 국면에 들어설 때마다 투자자들의 자금이 다른 대형주로 이동하며 지수가 내려갈 틈을 주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달 초까지 인공지능(AI) 산업 확대 기대와 반도체 슈퍼사이클 전망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이후 글로벌 기술주 약세와 고점 부담으로 반도체주가 숨 고르기에 들어서자 매수세는 자동차·로봇·조선·방산·원전 등 여타 주도 업종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코스피 전체 시총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약세를 보인 날(13일)에도 코스피는 오히려 상승하는 이례적인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대차는 아틀라스 공개를 기점으로 단순 내연기관 기업을 넘어 로봇, 피지컬 AI 스토리를 입으며 멀티플이 빠르게 확장됐고 연초 대비 주가는 80%나 급등했다.
②넘쳐 나는 시중 자금 유입=역대급 유동성도 코스피 상승을 뒷받침했다. 과거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개별 중소형주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대형주 중심 상장지수펀드(ETF)로 흘러들어 지수 전반을 끌어올렸다. 증시 대기 자금 역시 빠르게 불어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96조 3317억 원으로 3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1년 전(52조 7981억 원) 대비 약 82% 증가한 규모다. ‘빚투(빚내서 투자)’ 지표인 신용거래 융자 잔액도 29조 821억 원으로 5거래일 연속 늘어났다.
해외 투자자 자금 유입도 눈에 띈다.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대표 ETF인 아이셰어즈 MSCI 코리아(EWY)에는 최근 한 달 동안 11억 2000만 달러(약 1조 6000억 원)가 순유입되며 16일 기준 순자산(AUM)이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약 3배 늘어난 규모다. 3배 레버리지 상품인 ‘디렉시온 데일리 MSCI 사우스코리아 불 3X 셰어즈(KORU)’의 최근 1년 수익률은 600%를 넘어섰다.
③해외 국가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지수 급등에도 코스피의 밸류에이션 부담은 크지 않다. 상장사들의 실적 눈높이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 업계가 추산한 올해 국내 상장사들의 순이익 전망치는 354조 원으로 최근 3개월 사이 70조 원 이상 상향 조정됐다. 코스피는 올해 1월에만 17.52% 오르며 2000년대 이후 네 번째로 높은 월간 상승률을 기록 중이지만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0.48배로 과거 5년 평균(10.6배)을 밑돈다. 12개월 예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배를 웃돌아 과거 평균(1배)을 상회하지만 이익 성장에 따른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을 감안하면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 속 해외 증시 대비 코스피의 밸류에이션 매력도 부각되고 있다. 미국 증시가 AI 기대를 선반영한 반면 한국 증시는 실적 개선이 뒤늦게 주가에 반영되는 후행 구조를 보이고 있어서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이제야 이머징 마켓 평균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회복하며 극심한 저평가가 해소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스피가 5000 선을 지지한 뒤 그 위로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말 SK하이닉스와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의 실적 발표로 추가적인 이익 레벨업이 가능하고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전환과 투자 세제 관련 세법 개정 등을 감안하면 중기적인 상승 경로가 유지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개인투자자의 ‘기회 상실 우려(FOMO)’ 역시 지수의 추가 상승 요인으로 거론된다.
다만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경계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높은 금리 수준과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광폭 행보는 주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수 목표치로 거론되던 5000 선을 달성한 후에는 차익 실현 매물과의 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방향성은 유지되겠지만 상승 폭은 둔화되고 종목 간 차별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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