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선적 부두. 약 830m 길이의 부두 끝에 다다르자 램프(출입구)를 내린 대형 자동차운반선 두 척이 위용을 드러냈다. ‘거대한 이동식 주차 타워’로 불릴 만한 압도적인 규모였다. 길이는 200m, 높이는 30m에 달해 웬만한 15층 아파트 한 동이 바다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입을 벌린 선박 안으로 번호판이 부착되지 않은 수백 대의 수출용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운반선 내부에는 입체형 주차장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펼쳐졌다. 바다 위로 8개 층, 선체 아래로 4개 층 등 총 12개 데크가 모두 차량 적재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각 데크에는 차량들이 좌우 10㎝, 앞뒤 30㎝ 간격만 남긴 채 빽빽하게 배치됐다. 한 대라도 더 많은 물량을 나르기 위해 사이드미러도 펴지 않은 채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모습이었다.
강기문 현대차(005380) 수출선적팀 책임매니저는 “유럽과 미국으로 출발하는 6만 톤급 선박 두 척이 수출용 차량을 가득 채우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2025년 역시 예상했던 수출 목표치인 100만 대 이상을 무리 없이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67년 울산 공장의 설립과 함께 탄생한 현대차 선적 부두는 약 60년간 한국 경제의 핵심인 자동차 수출의 거점으로 역할을 해왔다. 하루에만 최대 4800대, 연간 약 110만 대의 차량이 해외로 수출된다. 이는 울산 공장이 생산하는 전체 물량의 80% 수준에 달한다.
이곳을 떠난 선박은 한 번에 많게는 30여 개국을 돌며 차량을 하역한다. 대표적인 장거리 항로인 유럽 노선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홍해 인근 국가를 거쳐 독일·이탈리아와 같은 서유럽 국가는 물론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까지 두 달에 걸쳐 항해한다. 미국 서부 도시 등 짧은 항로의 경우에도 보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현대차는 이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전체 국가(228개) 중 80%가 넘는 190여 개국에 차량을 수출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수출선적부 직원들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곳 울산 공장 수출항은 신정 공휴일(1월 1일), 근로자의 날(5월 1일), 설·추석 연휴 등 8일을 제외한 357일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에 차량을 공급하는 일은 한국 시계에 맞춰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 매니저는 “30년간 현장을 지키며 수출 선적이 멈추지 않는 순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다”며 “매일같이 해외로 향하는 차량들을 보며 한국 경제의 흐름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최대 수출국인 미국의 관세 부과에도 수출 현장은 예년과 다름없이 분주했다. 매달 수천 대씩 생산되던 현대차의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이오닉5의 미국 수출이 중단됐지만 유럽 등 다른 권역으로 판매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덕분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 관계자는 “목적지만 달라졌을 뿐 선적장에 매일 아침 4000대가 넘는 차량이 주차돼 배에 실리는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울산지역본부에 따르면 울산의 2025년 11월 미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한 11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됐으나 캐나다·호주·영국·독일 등 수출이 증가하며 전체 수출은 0.3% 감소하는 데 그쳤다.
수출 부두를 지나 현대차 울산 3공장 의장 라인에 들어서자 현대차의 대표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가 컨베이어를 따라 쉼 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3공장은 아반떼를 비롯해 베뉴·코나·i30 등 현대차의 글로벌 수출 볼륨 모델을 책임지는 핵심 생산 기지다. 수출 물량이 많은 곳인 만큼 독일·영국·미국 등 각국의 기준에 맞는 차량 생산이 한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라인 곳곳에서는 조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한 불량을 걸러내기 위한 검수 작업도 반복됐다. 현재 현대차 울산 공장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9.6초당 1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만 3만 1000여 명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새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총 125조 2000억 원의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전동화, 로보틱스 등이 중점 분야로 미래차 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2024년 218만 대를 기록했던 완성차 수출도 2030년까지 247만 대로 늘린다. 특히 전동화 차량 수출은 2024년 69만 대에서 2030년 176만 대로 2.5배 이상 확장시킬 계획이다. 실제 이날 현대차그룹의 대표적인 미래차 공장인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도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 규모의 이 공장은 새해부터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모델인 GV90 등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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