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의 얼굴을 공개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PD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헌재는 해당 방송이 공익적 목적을 가진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서울서부지검이 SBS 이동원 PD에게 내린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 기소유예 처분을 이달 18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취소했다.
이 PD는 2021년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정인이는 왜 죽었나,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가야할 길’ 편을 통해 정인이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제작진은 “학대의 흔적이 유독 얼굴에 집중돼 있고, 아이의 표정에 그늘이 져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 없었다”며 얼굴 공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같은 해 10월 방송이 정인이의 얼굴과 생년월일 등 인적 사항을 노출했다며 이 PD를 고발했다. 서울서부지검은 2023년 6월 아동학대처벌법상 보도금지 의무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아동학대처벌법은 방송사 편집책임자 등이 아동보호 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 행위자, 피해 아동, 고소·고발인 또는 신고인의 주소, 성명 등 인적 사항이나 사진 등을 출판물이나 방송을 통해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이 PD는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약 2년간의 심리 끝에 해당 처분을 취소했다.
헌재는 이 PD의 행위가 형식적으로는 아동학대처벌법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돼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기소유예 처분은 정당행위에 관한 중대한 법리 오해 또는 수사 미진에 의한 것으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특히 헌재는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방송은 피해를 그대로 전달해 시청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받았다"며 "가족관계나 학대 경위를 설명하는 외에는 주변인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흐린 화면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헌재는 정인이가 이미 사망한 점을 언급하며 해당 조항의 보호법익인 ‘피해 아동의 2차 피해 방지와 건강한 성장 도모’라는 기본적 목적은 더 이상 달성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망한 피해 아동의 인격적 이익을 보호할 필요성 자체는 영전히 존재하지만, 이 방송으로 정인이에 관한 사적 영역이 무분별하게 폭로되거나 자극적으로 소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사건의 진상이 충분히 조사되고 규명돼 가해자가 책임에 부합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아동학대로 사망한 피해아동의 입장에서 가장 큰 이익이라고 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이 사건 방송은 피해아동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당 방송은 아동학대 범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제작됐으며,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로서의 의미도 가진다고 봤다.
실제로 방송 이후 양모 장모 씨는 살인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35년형이 확정됐고, 아동학대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법령 정비 등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다. 해당 방송은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헌재는 함께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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