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달러 강세 여파 등에 17일 8개월여 만에 장중 1480원을 돌파했다. 국내 통화정책의 수장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 환율 상태가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지만 안심할 수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주간 종가보다 2.8원 오른 1479.8원에 오후 거래를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적 관세 인상으로 불안감이 확산한 올해 4월 9일(주간 종가 1484.1원) 이후 8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장중에는 1482.3원까지 튀어 올라 4월 9일 장중 최고가(1487.6원)에 바짝 다가섰다.
위험 회피 심리가 확대돼 달러가 강세를 나타낸 데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환율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이날 오전 98.172에서 오후 98.470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전날 미국의 고용지표 발표 후 리스크 회피 심리에 아시아장에서 달러 가치가 치고 올라왔고 외국인의 국내 증시 순매도, 수입 업체들의 달러 결제 수요가 더해지면서 환율이 추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을 하면서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환율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 상황이다. 한은이 국민연금과 650억 달러 한도의 외환스와프 계약을 1년 연장한 데 이어 이날 시장에서는 외환스와프가 실제로 가동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외환스와프를 가동하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위해 시장에서 달러를 사지 않고 한은의 외환보유액을 통해 달러를 조달할 수 있어 환율 안정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투자 주체들의 달러 수요가 지속되면서 환율 상승세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내년에도 하락 반전하기보다는 1450원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서울경제신문이 외환 전문가, 경제학과 교수,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등 1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내년에도 원·달러 환율이 평균 1460~1500원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1460~1480원이 7명(46.7%)이었고 1480~1500원은 2명(13.3%)이었다. 1460원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명에 불과했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최근 환율 급등은 전 세계 달러 부족,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 증가, 기업들의 달러 보유, 대미 투자 불확실성 등 여러 복잡한 변수가 작용한 결과”라며 “어느 한 요인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고환율 구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최근 환율 급등과 관련해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 설명회에서 “(최근 환율 상승이)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다”라면서도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성장 양극화 등을 생각할 때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 역할 확대를 거듭 주문했다. 그는 외환 당국과 국민연금이 함께 추진 중인 ‘뉴프레임워크’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때 거시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면서 자산운용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국민연금 수익률은 원화로 평가되는데 나중에 국내로 자금을 들여오게 되면 원화가 절상되면서 수익률이 떨어지게 된다”며 “어떤 수익률로 보상할지 서로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 헤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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