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와 첫 번째 임기 사이의 여러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 계층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었다. JD 밴스 부통령은 “전문가들의 생각보다 우리의 상식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백신과 관련된 의료 전문가들의 견해를 연이어 뒤집고 있고, 팸 본디 법무부 장관은 개인에 대한 충성심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법무부 관리들을 줄줄이 몰아내고 있다. 이는 미국 문화혁명의 일환으로 현재 미국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유능한 엘리트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다.
지난 수십 년 간 아이비리그 졸업장과 특정 기술·훈련으로 무장한 이른바 능력주의 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재계, 정부, 언론과 문화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전문가 계층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접점을 잃은 채 자만심에 빠진 기술 관료 집단으로 변모한 것 또한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를 쏟아내기에 앞서 능력에 기반한 엘리트의 부상이 옳은 방향으로의 역사적 이동이었음을 기억하자.
그 전의 현실은 어땠는가. 당시에는 혈연과 가문, 종교, 명문사립학교와 클럽 등 학연의 연줄로 엮어진 ‘올드보이 네트워크’가 소속원들의 출세를 보장해주었다. 능력본위제(meritocracy)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았다. 능력과 학문적 탁월성에 바탕을 둔 승진 제도가 확립됐고, 카톨릭·유대인·아시아인·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기득권층 내부로 진입했다. 능력주의는 혈통보다 능력을, 상속받은 재산보다 일을 중시했다.
능력주의는 양질의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동문 혹은 주요 기부자 자녀에게 입학 특례를 제공하는 레거시 입학이나 인종 할당제와 같은 비실력적인 제도를 축소한다. 그러나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능력주의를 매도하면서 이를 더 낡고, 조잡하며 부식성 강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바로 초부유층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노골적인 금권주의(plutocracy)다. 우리는 억만장자 각료들로 채워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정부를 갖고 있다. 어마어마한 부의 소유자는 무슨 일이건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된다.
이 같은 사고의 뒷면에는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해상충이다. 지난 5월 스티브 위트코프, 트럼프와 그들의 아들들이 설립한 암호화폐 회사는 아랍에미리트(UAE)의 국가안보보좌관 셰이크 타눈 빈 자예드 알-나히안이 지배하는 회사로부터 20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2주 후 백악관은 미국의 최첨단 인공지능(AI) 칩에 대한 UAE의 접근권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UAE 측 협상 대표는 타눈이었고, 이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백악관 내 인사는 위트코프였다. .
거의 패러디에 가까운 금권정치의 한 예가 민간 기부자들의 자금으로 신축되는 3억 달러 짜리 백악관 연회장이다. 기부자들의 재산은 연방 계약, 규제 결정, 담합금지법 집행, 관세와 수출 라이센스에 의해 좌우된다. 트럼프는 “미국인 납세자들이 경비를 단 한푼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대단한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거대 기업에 특혜를 요구할 때는 특별 대우,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댓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게 역사가 일러주는 교훈이다. 게다가 실제로 비용을 지급하는 주체는 납세자들이다. 차라리 납세자들이 연회장 건설에 직접 자금을 댄다면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어갈 것이다.
현재 첨단 기술 업체를 이끄는 억만장자들은 그들이 누리는 백악관 접근권을 기꺼워할 것이다. 그 접근권의 대가는 백악관 억만장자 클럽에 가입할 돈과 인맥을 갖추지 못한 채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차고에서 땀 흘리며 고생하는 젊은 사업가들이 지급하게 될 것이다. 이미 초부유층에게 큰 혜택을 주는 세법으로 인해 오늘날의 재벌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세습 엘리트로 변할 것이고, 각 엘리트 가문은 대대로 권력과 특권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적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반대다. 토마스 제퍼슨에게 사회를 세우는데 있어 자연이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교훈은 사회가 덕성과 재능에 기반한 자연적인 귀족제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정부는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지도자들을 선택한다. 잘못된 모델은 부와 출생에 근거한 인위적 귀족제였다. 제퍼슨은 이 같은 시스템이 미국에서 힘을 얻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맞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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