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금융기관들과 체결한 ‘환율(FX) 트리거’ 계약이 수억 달러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FX 계약은 대부분 원·달러 환율이 1490원을 넘기면 발동하도록 설계돼 있어 우리 기업들이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2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외국계 은행 2곳이 국내 기업과 체결한 FX 트리거 계약은 총 28건, 4480만 달러인 것으로 집계됐다.
FX 트리거는 수출 기업들이 환율 헤지를 위해 금융기관들과 맺는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원·달러 환율이 사전에 약속한 일정 수준 밑에서 유지되면 은행이 기업들에 유리한 환율로 환전해주지만 일정 수준을 일단 넘어서면(Knock in·녹인) 기업이 시장 환율보다 더 낮은 환율로 달러를 은행에 매각하는 조건이 발동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를 흔들었던 키코(KIKO) 상품과 구조가 유사하다. 가령 트리거 조건을 달러당 1490원으로 정해놓은 1000만 달러 계약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환율이 1490원을 넘기는 순간 기업은 사전에 설정한 매각가에 1000만 달러를 은행에 매각해야 한다.
문제는 국내 기업 대다수가 달러당 1490원을 트리거 환율로 정해놓았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 기업 A사가 B은행과 체결한 계약서를 보면 원·달러 환율이 1490원에 진입할 경우 발동하는 계약이 3000만 달러였고 1500원대에 발동하는 계약이 1000만 달러에 달했다. C은행은 1489.5원과 1495.5원에 발동하는 계약을 각각 240만 달러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가 외국계 은행 2곳에서만 체결된 계약만 집계한 것임을 감안하면 전체 FX 트리거 계약은 최소 수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원·달러 환율 최고가는 장중 1487.6원을 찍었던 4월 9일이었으며 이후 1490원 선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만약 올해 원·달러 환율이 1490원 선을 넘길 경우 충격 흡수 능력이 약한 중소기업부터 대규모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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