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금산분리 완화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금융계에서는 ‘금융업의 산업 진출’ 논의는 여전히 소외됐다는 반응이다. 일본처럼 인구 감소와 기술 변화에 맞춰 은행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 가운데 비금융 분야에서 의미 있는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신한은행의 배달앱 사업 ‘땡겨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리브엠’ 등 두 곳에 불과하다. 이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채택된 엄격한 전업주의 규정 탓이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은 비금융회사의 지배를 사실상 금지하고 은행법은 의결권 있는 타 회사 지분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견고한 분리 장벽으로 인해 금융사들은 ‘규제 샌드박스’ 특례라는 우회로를 통해서만 예외적으로 비금융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이제는 우리도 일본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은행의 업무 범위를 엄격하게 규제해온 일본은 인구 감소, 기술 발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 문턱을 낮추고 있다. 1997년 은행법을 개정해 은행의 벤처기업 자회사 편입을 허용한 뒤 2008년 사업재생회사(회생 등을 거쳐 경영에 기여하는 새 사업을 하는 회사), 2016년 은행업고도화회사(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편의 향상에 기여하는 회사) 등을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게 예외를 뒀다. 또 2021년에는 지역 활성화, 산업 생산성 향상 등 지속 가능성 확보에 보탬이 되는 공익적 사업까지 할 수 있게 문을 넓혔다.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일본 은행들은 지역 경제와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본 내 자산 규모 7위인 후쿠오카파이낸셜그룹은 2023년 금속가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종합상사 ‘FFG 인더스트리스’를 세워 규슈 지역의 금속가공업자와 발주자를 연결해주고 있고 10위권인 메부키파이낸셜그룹은 재생에너지 회사인 조요그린에너지를 설립해 전력구매계약(PPA)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일본 최대 은행인 일본 미쓰비시UFJ(MUFG)도 철광석·밀과 같은 기업 재고를 매입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상사 회사인 ‘MUFG트레이딩’을 운영하고 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발전 차원에서 금융업 규제는 제한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최소한 금융지주 체제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사업 등에 대해서는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수 업무 확대와 자회사 투자 확대는 금융권의 오랜 숙원이나 제도적 진전은 미미한 상황이다. 2022년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입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다행히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비금융회사 주식 보유 한도 확대(5→15%)를 골자로 한 금융지주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하면서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협회 관계자는 “카카오가 은행업 라이선스를 받았지만 은행이 산업계로 진출하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며 “부수 업무 규제를 포괄주의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요청을 전달했지만 의미 있는 진척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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