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엔 마이크론 고대역폭메모리(HBM) 자리가 있었지만 구글엔 없다.”
구글이 주도하는 자체 인공지능(AI) 반도체 텐서처리장치(TPU) 생태계가 확장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판도가 재편될 조짐이다.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는 3사(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마이크론)가 경쟁했지만 구글의 맞춤형 칩(ASIC) 진영에서는 마이크론이 생산능력(CAPA) 한계로 사실상 탈락하며 K-반도체 양강 구도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구글발(發) 자본 효율화 전략이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춘 삼성과 SK에겐 기회가 되고 생산 여력이 부족한 후발주자엔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의 TPU 생태계 확장이 글로벌 HBM 공급망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파전으로 좁히고 있다. TPU는 구글이 AI 구동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팹리스 브로드컴과 합작해 설계한 칩으로, 칩 하나당 6~8개의 HBM이 탑재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구글 TPU 공급망의 핵심 축을 담당하며 물량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량 못 맞추면 아웃”…마이크론의 한계
업계는 생산 역량 격차에 주목한다. 구글 같은 빅테크가 자체 칩을 생산할 때는 안정적인 대량 공급이 필수적이다. 마이크론의 체급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계 글로벌 금융사 HSBC 집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웨이퍼 기준 월간 HBM 생산능력은 약 5만 5000장에 불과하다. 삼성전자(15만 장)와 SK하이닉스(16만 장)의 3분의 1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은 현재 엔비디아 물량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며 “대규모 물량이 필요한 구글의 ASIC 고객사 대응까지 병행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결국 규모의 경제 싸움에서 한국 기업들이 승기를 잡은 셈이다.
삼성전자, 구글 업고 HBM 점유율 대반격
삼성전자에게 구글은 구원투수나 다름없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1, 2위를 차지하는 HBM 시장 판도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HBM 시장 점유율 40%로 2위를 지켰으나 올 2분기에는 15%까지 급락하며 SK하이닉스(64%)는 물론 마이크론(21%)에도 뒤처진 3위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구글 TPU 물량이 본격화되는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구글의 7세대 TPU에는 5세대인 HBM3E가, 내년 8세대 모델에는 6세대인 HBM4가 탑재될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내년에 올해 대비 2배 이상의 물량을 구글에 공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올해 구글 내 HBM 공급 비중을 삼성과 SK가 대등하게 양분하고 있거나 소폭 앞서는 것으로 추산하며 삼성의 공격적인 증설이 반영되는 내년에는 역전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HBM 쏠림에…구형 D램값 7년 만에 최고가 ‘기현상’
AI 열풍으로 반도체 공정이 HBM에 집중되면서 일반 구형(레거시) 메모리 가격이 폭등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HBM 생산을 위해 기존 라인을 전환하다 보니 범용 D램 공급이 줄어들어서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인 DDR4 8GB의 11월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8.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15.7%나 급등한 수치다. 범용 D램 가격이 8달러 선을 돌파한 것은 2018년 9월 이후 약 7년 2개월 만이다. 구글이 쏘아 올린 AI 효율화 경쟁이 최첨단 HBM 시장의 재편은 물론, 레거시 시장의 가격 상승까지 견인하는 ‘슈퍼 사이클’의 진입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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