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003550)그룹이 올 연말 인사에서 신규 임원 승진 규모를 두 자릿수로 대폭 축소하며 혹독한 쇄신을 단행했다. 가전과 2차전지, 석유화학 등 그룹의 주력 사업 전반에 걸쳐 중국의 저가 공세와 기술 추격이 거세지자 구광모 회장이 전시에 준하는 위기 경영 기조를 내건 조치로 풀이된다. LG는 조직의 군살을 빼는 대신 인공지능(AI)·바이오·클린테크 등 이른바 ‘ABC’ 분야의 기술 인재를 전면에 내세워 미래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사활을 걸 것으로 전망된다.
LG는 27일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하고 총 98명의 승진자를 냈다. 지난해(121명) 대비 약 19% 감소한 수치로 2021년 177명, 2022년 179명, 2023년 160명, 2024년 139명으로 이어지던 감소세가 정점을 찍으며 처음으로 두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구 회장 취임 후 지속되던 ‘안정 속 혁신’ 기조가 ‘생존을 위한 고강도 쇄신’으로 급선회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LG ‘성과주의’ 입각한 철저한 신상필벌
주력 계열사 수장 교체로 분위기 쇄신
주력 계열사 수장 교체로 분위기 쇄신
이번 인사의 핵심은 그룹 양대 축인 LG전자(066570)와 LG화학(051910)의 최고경영자(CEO) 교체다. LG전자는 류재철 사장이, LG화학은 김동춘 사장이 각각 신임 CEO로 선임됐다. 류 사장은 생활가전(HS)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가전 사업의 수익성을 방어하고 구독 사업 등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사장은 첨단소재사업본부장으로서 전자소재 사업을 고수익 구조로 전환한 성과를 높이 평가받았다. 두 신임 CEO 모두 현장 경험이 풍부한 ‘기술통’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 2인 부회장 체제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권봉석 ㈜LG 부회장 1인 체제로 재편됐다. 의사결정 단계를 단순화해 경영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컨트롤타워가 슬림화되면서 구 회장의 친정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계열사 CEO들의 책임 경영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고강도 인사의 배경에는 실적 부진과 중국발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LG전자와 LG화학 등 주요 계열사는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내수 부진이 겹치며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지난해 LG 주요 7개 계열사의 합산 영업이익률이 0%대에 머무르는 등 ‘이익 체력’이 고갈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구 회장은 올 9월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중국 경쟁사들이 자본과 인력을 4배 이상 투입하고 있다며 구조적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ABC’ 분야 인재 발탁해 미래 준비
40대 젊은 리더십, 조직 활력 제고
40대 젊은 리더십, 조직 활력 제고
LG는 전체 승진 규모를 줄이는 와중에도 미래 성장 동력인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의 인재는 과감히 중용했다. 이번 신규 임원 중 ABC 및 R&D(연구개발) 인재 비율은 21%에 달한다. 특히 올해 최연소 상무(조헌혁·1986년생), 전무(임우형·1978년생), 부사장(김태훈·1975년생) 승진자가 모두 AI 분야 전문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당장의 실적 방어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LG는 자체 초거대 AI ‘엑사원’을 중심으로 계열사 전반의 인공지능 전환(AX)을 가속화하고 있다. 80년대생 상무 3명을 신규 선임하며 조직의 연령대를 낮춘 것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재무적으로는 지주사인 ㈜LG의 실적이 회복세에 접어든 점이 위안거리다.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LG의 매출은 8조 77억 원, 영업이익은 9668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6%, 56%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주사의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계열사들의 사업 구조 재편과 미래 기술 투자를 뒷받침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LG그룹은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한계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미래 사업 투자는 신속하게 진행하는 선택과 집중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조직 슬림화와 세대 교체가 조직 내부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도 내놓는다. 베테랑 경영진의 퇴진과 젊은 피 수혈이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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