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최소 65명이 숨지고 279명이 실종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1948년 176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 창고 화재 이후 77년 만에 최악의 인명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위해 설치한 대나무 비계(작업자 이동용 간이 구조물) 등 가연성 건축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불길이 빠르게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고의 인구 밀집 지역인 홍콩 특유의 ‘닭장 아파트’ 구조가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홍콩 성도일보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고층 아파트인 ‘웡 푹 코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 1명을 포함해 최소 65명이 숨지고 76명이 부상을 입었다. 홍콩 당국은 이날 새벽 279명이 실종된 상태라고 밝혔으나 이후 발표에서 실종자 숫자를 추가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자력으로 탈출하거나 구조된 주민 900여 명은 8개의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화재가 일어난 타이포 구역은 중국 본토에 인접한 교외 주거 지역으로 약 30만 명이 거주한다. 웡 푹 코트는 32층짜리 주거용 고층 아파트 단지로 2000가구에 48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는 전날 오후 2시 52분께 발생했다. 8개 동 가운데 7개 동에 옮겨 붙은 불은 발생 27시간 만인 27일 저녁에야 완전히 진화됐으나 강풍에 산발적으로 다시 불이 붙고 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불길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번진 원인으로 아파트 보수 공사를 위해 설치한 건축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3년 준공돼 올해로 42년에 접어든 이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7월부터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공사를 위해 건물 외벽에는 화재에 취약한 대나무 비계와 플라스틱 안전망이 설치돼 있었는데 외려 불길을 키우는 역할을 한 셈이다. 홍콩에서는 금속 비계 대신 대나무 비계를 주로 사용한다. 구하기 쉽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구성이 낮고 화재 위험성이 높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올 들어 대나무 비계 관련 화재만 최소 3건이 발생했으며 각종 안전사고도 다수 일어났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해 홍콩 정부는 올해 3월부터 대나무 비계를 현장에서 점진적으로 퇴출하기로 했으나 대나무 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나무 비계 외에 화재에 취약한 스티로폼이 창문을 막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홍콩 소방 당국은 “건물 유리창 곳곳에 스티로폼을 붙인 것을 발견했으며 각 층 엘리베이터 홀의 창밖도 스티로폼으로 막혀 있어 화재를 더 키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리모델링 업체는 공사 중 유리창 손상을 우려해 스티로폼 보드를 부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빌딩 수리 시공사인 홍업건축공정유한공사는 지난해 10월 공사 중 유리창 보호를 위해 발포 스티로폼 보드를 창문에 붙이겠다고 주민들에게 공지했다.
세계 최고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일명 ‘닭장 아파트’가 많은 홍콩 특유의 주택 구조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화재가 난 단지는 건축면적 48∼54㎡(약 14.5∼16.3평)인 소형 세대로 구성돼 있고 동 간 간격이 좁아 불이 옮겨붙기 쉬운 구조다. 홍콩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민의 약 36%가 65세 이상 고령자로 일부 주민은 거동이 불편해 대피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화재에 취약한 환경에서 불씨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공사 작업자의 흡연 문제를 지적하는 주민 민원이 제기됐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주민들은 현지 언론에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인재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홍콩 경찰은 ‘형사 사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과실치사 혐의로 공사 업체 이사 2명과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1명 등 3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전하는 한편 홍콩 정부가 화재 진압에 총력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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