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5일 “주주 충실 의무 명문화,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이어 자사주 소각 의무를 담은 세 번째 상법 개정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법 개정 시 투기 자본에 대응할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사라질 것이라는 재계와 기업의 절박한 호소는 끝내 외면당했다. 1·2차 상법 개정 대응으로 기업 부담이 이미 가중된 상황에서 3차 개정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민주당이 발의한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한다. 대표 발의자인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며 시장을 우롱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기업 현실을 도외시한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부재한 우리 기업에 사실상 유일한 방패다. 황금주·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기본적 수단조차 없는 탓에 기업은 투기 자본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소버린의 SK 공격 이후 2011년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 취득·처분을 허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 재편이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없게 되면 기업의 자율 경영 역시 제약된다. 장기적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취득 여력도 줄어든다. 당장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유통 주식이 줄면 주가는 상승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자사주 매입 동력이 약해지면 시장의 체력은 되레 저하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이미 1·2차 상법 개정의 ‘원투 펀치’에 비틀거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정부·여당이 ‘코스피 5000’ 목표에 집착해 주가를 끌어올리려 기업을 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62.5%가 소각 의무화에 반대했다. 제도 변화에 적응할 최소한의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다시 규제를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 더구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 경영 활동과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조치다. 지금 당정이 할 일은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능력을 훼손시키는 상법 개정이 아니라 황금주·포이즌필과 같은 실질적 경영권 방패를 기업에 쥐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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