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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3대 기술 싱크탱크 SRI, 韓 딥테크에 'IP 수혈' 나선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실리콘밸리 심장부로 불리는 미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기찻길 건너 스탠퍼드대와는 제법 떨어진 한적한 길가에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하는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이 눈길을 끈다. 겉보기에는 여느 공대 연구소와 다를 바 없지만 입장에 ‘정부 발급 신분증’을 요구하는 삼엄한 경비와 ‘SRI’라는 단순한 로고가 무거운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인터넷의 전신인 아파넷(ARPAnet), 마우스와 LCD, 음성 인공지능(AI) ‘시리’가 탄생한 장소, 실리콘밸리 연구개발(R&D) 메카, 미국 3대 기술 싱크탱크로 꼽히는 SRI 인터내셔널을 지난 20일(현지 시간) 찾았다.

미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위치한 SRI 인터네셔널 헤드쿼터. 대학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외관이 최초 스탠퍼드 연구원으로 만들어진 배경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윤민혁 기자




SRI는 1946년 ‘스탠퍼드 연구원’으로 탄생했다. 한국 언론에 개방된 것은 79년 역사 속 처음이다. SRI는 태생부터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긴밀한 협력으로 첨단 기술을 연구해왔다. 아파넷 외에도 최초 상용 수술 로봇 다빈치, 첫 말라리아 치료제, 세계 최초 자율이동 로봇 등이 SRI의 대표적 성과다. 1987년에는 RCA 연구소, 2023년에는 제록스 산하 PARC 연구소를 흡수하며 명실상부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 첨단 기술 연구의 중심축으로 올라섰다.

현 SRI는 스탠퍼드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대학과는 독립된 비영리연구기관이다. 베트남전 당시 군사 관련 연구를 반대하는 여론이 거셌던 탓이다. 이에 SRI는 1970년 상아탑과 연계를 포기하고 미국 기술 패권과 안보 강화에 보탬이 되는 길을 택했다. 50여년이 흐른 현 시점에도 SRI는 미 국방부·정보기관과 가장 밀접한 연구소로 꼽힌다. 미국 전역의 SRI 연구소 14곳 중 두 곳은 그 위치조차 기밀이라는 점이 연구 내용을 짐작케 한다. 실제 이날 SRI 내부에서는 신체 증강 슈트, 폭발물 해체 로봇과 항공·우주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모두 즉각적인 군사 목적 활용이 가능한 분야다.

SRI가 연구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손’. 로봇 손은 피지컬 AI 구현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로 꼽힌다. 사진제공=SRI


기밀에 쌓여 있던 SRI가 벤처펀드 글로벌이노베이션랩스(GLI)와 손잡고 한국·일본·싱가포르 등지 딥테크 스타트업 발굴에 나선다. 빗장을 푼 이유는 명확하다. SRI가 지닌 ‘실험적 기술’을 ‘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벤처캐피털(VC)로 유명한 인큐텔(In-Q-Tel) 출신인 토드 스태비시 SRI벤처스 부사장은 “SRI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지식재산권(IP)을 갖고 있어 내부 자원만으로 상용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SRI는 현재 1만3000여 개 특허권을 보유 중으로, 매년 추가되는 특허만 400~500개에 달한다.

SRI가 GIL과 협력을 택한 배경에는 비영리기관이라는 특성이 있다. SRI는 구조상 직접 투자가 불가능해 스타트업에 자금 대신 IP를 제공한다. GIL은 자금을 수혈해 한국 등 동아시아 유망 딥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게 된다. 스태비시 부사장은 “훌륭한 연구자를 발견해 SRI의 수천 달러 규모 IP를 주입하면 즉각 성숙한 ‘시리즈A~B급’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이 탄생한다”며 “세계적인 수준의 SRI 엔지니어를 투입해 스타트업 성장을 가속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RI 로비에 전시된 발명품들 앞에서 SRI와 GIL 관계자들이 기념촬영 중이다. 왼쪽부터 김한길 GIL 파트너, 데이비드 박 GIL 제너럴 파트너, 토드 스태비시 SRI벤처스 부사장. 윤민혁 기자


GIL는 첫 글로벌 오피스로 한국을 택했다. 한국의 탄탄한 제조업 역랑과 기초과학 기술력, 스타트업 생태계에 주목한 덕이다. 사실 SRI는 1960년대부터 일본과 깊이 협력해왔다. SRI의 유일한 국외 연구소도 일본에 위치해 있다. 60여년 전부터 일본의 기초과학, 제조업 기술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SRI와 GIL의 행보는 이제 미국의 가장 내밀한 연구기관도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데이비드 박 GIL 제너럴파트너는 “한국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탁월한 제조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SRI의 혁신적 IP와 한국 기업의 상용화 능력이 결합한다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SRI는 AI·차세대 통신·바이오·우주 항공·양자 등 ‘딥테크’ 스타트업에 주목하고 있다. SRI 연구 분야와 보유 IP가 최선단 기술인 만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나아가 미국 규제에 문제가 없다면 투자한 스타트업과 미국 정부 간 계약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GIL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일본, 싱가포르를 중심축으로 활동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SRI와 GIL 간 파트너십, 한국 사무소 개설은 최근 급속 강화 중인 한·미 국방·안보 관련 협력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시기가 묘하다. 스타비시 부사장은 12월 3일 산업통상부 주최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25 코리아 테크 페스티벌(옛 한국 R&D 산업대전)'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SRI가 지닌 한국 시장의 비전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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