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의 세부 내용이 담긴 ‘공동 자료(조인트 팩트시트)’가 확정돼 공개되자 관세 불확실성에 휩싸였던 자동차·반도체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세 협상 타결에 주요 역할을 했던 조선 업계도 한미 간 협력의 중요성이 거듭 확인된 것을 반기며 한국과 미국 조선소에 대한 투자 확대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맞고 있는 철강 업계는 끝내 협상에서 제외되자 비상 계획(컨틴전시플랜)을 가동하며 위기 대응에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14일 한미 양국이 공개한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와 차 부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관세 인하 시점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이달 1일부로 15% 관세율이 소급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을 세계 최대 수출 시장으로 삼고 있는 현대차(005380)그룹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올 4월부터 25% 관세를 부담하며 일찌감치 관세 협상을 마친 도요타·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보다 10%포인트 넘는 관세를 더 떠안아야만 했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국내 완성차와 부품 업계는 수익성이 큰 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관세가 15%로 낮아지면 한 해 기준 현대차는 현행 기준 2조 4000억 원, 기아(000270)는 1조 6000억 원의 수익 증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차그룹은 "어려운 협상 과정을 거쳐 관세 타결까지 국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준 정부에 감사드린다" 며 "앞으로도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협상 결과로 대만·일본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구도가 형성돼 안도하고 있다. 미국이 아직 대만과 관세 협상을 매듭짓지 못해 반도체 관세를 책정할 경우 다른 나라와의 합의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을 적용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157억 4000만 달러(22조 9756억 원)로 1년 전보다 25.4% 늘면서 한국 수출의 버팀목인데 최소한의 관세 보호막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워 관세 협상 타결에 기여했던 조선 업계는 한미 조선 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을 반기며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약속했다. 한화(000880)그룹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방향에 맞춰나갈 것”이라며 “한미 동맹 및 안보 강화를 위한 결정에 따라 거제조선소 투자 및 확장은 물론 지역 협력 업체와 상생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이어 “거제조선소의 기술과 역량을 미국에도 접목해 최고의 안보 파트너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 재건 소요에 맞춰 조선소 추가 투자를 통해 상선은 물론 추후 함정 건조를 위한 인프라를 갖출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HD현대(267250)도 “팩트시트 확정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글로벌 1위 조선사로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반도체·조선 업계가 관세 협상 마무리에 반색한 반면 철강·알루미늄 업계는 50% 관세가 확정돼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철강 업계는 2월부터 25%의 관세를 부담하다 6월부터는 관세율이 50%로 상향됐다. 미국은 지난해 기준 철강 수출액이 29억 달러(약 4조 원)에 달하는 주요 시장이다.
하지만 관세 부과로 올 해 9월까지 대미 철강 수출은 약 28억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특히 대미 수출이 급증한 변압기를 비롯해 볼트 등 관련 파생상품에도 제품에 포함된 철강 비율에 따른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관세 부과가 확정된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407개 품목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118억 9000만 달러에 이른다.
고율 관세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철강 업계의 움직임은 빨라질 전망이다. 현대제철(004020)은 58억 달러(약 8조 5000억 원)를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에 제철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연간 27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전기로 일관제철소로 포스코그룹이 공동 투자자로 참여한다. 포스코그룹은 또 미국 2위 철강사인 클리블랜드클리프스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으며 관세장벽을 정면 돌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무역협회는 50% 관세가 확정된 철강·알루미늄 업계의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 이날 미국 관세 대응 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에서는 무역 합의의 주요 내용과 철강·알루미늄 함량 가치 산정 방법, 비특혜 원산지 기준 확인 등과 함께 미국 틈새 시장과 대체 시장 확보 전략들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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