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강력한 엔진과 최고 속도에 열광한다. 하지만 정작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속도만큼이나 브레이크의 성능에 집착한다. 왜일까. 브레이크는 속도를 줄이는 장치가 아니라 속도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제동력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운전자는 망설임 없이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성장을 가속하는 엔진이 기술이라면 그 기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나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은 바로 제품 안전 체계다. 속도를 높이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를 안전하게 제어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일이다.
얼마 전 브레이크를 제거한 픽시자전거를 타던 이용자가 제동하지 못하고 건물 외벽에 충돌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단순한 자전거조차 멈출 수 없는 속도는 한순간에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변한다. 이 사고는 기술의 속도를 높이는 일보다 그 속도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장치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발화, 자율주행자동차의 오작동, 스마트홈 기기의 해킹, 인공지능(AI)의 판단 오류 등은 모두 기술 발전이 곧 안전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AI와 같은 지능형 기술은 물리적 위해를 가하진 않아도 인지적 혼란이나 정보 왜곡 같은 새로운 형태의 위해를 낳고 있다. 제품이 복잡해질수록 위험은 정교해지고 예측은 어려워지며 작은 설계 결함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안전은 기술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다. 브레이크가 있어야 자동차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듯 안전이 확보돼야 기술은 사회의 신뢰 속에서 힘을 얻고 성장할 수 있다. 안전 없이 성과만을 서둘러 좇는다면 예기치 못한 사고와 그로 인한 불신이 쌓여 기술 발전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가전제품, 전기자동차, AI 기반 서비스 등 수많은 첨단기술 덕분에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안전이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 서 있지 않다면 우리의 풍요로운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기술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그 수단 자체의 안전성이 보장돼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와 기업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기술 철학이다. 안전을 단순한 비용이나 규제가 아닌 제품의 본질적 가치로 인식하고 개발 초기부터 전 과정에 걸쳐 체계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진정한 완성도는 최고 사양이나 첨단 기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가치를 안전이라는 토대 위에서 지켜내는 능력, 그것이 바로 완성이다.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안전은 기술혁신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속도를 조절하는 브레이크가 자동차의 완성도를 높이듯 안전은 제품의 신뢰를 지탱하고 기술의 미래를 여는 필수 조건이다. 진정한 혁신은 더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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