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을 일으킨 반역자다. 노 전 대통령 사망 당시에도 ‘역사의 죄인’이라 평가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들어 다소 의아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재명 정부 첫 번째 주중대사로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동북아연구재단 이사장을 임명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는 상징성, 중국과 관계를 이어온 노 대사의 전문성, 관얼다이(고위 관료의 자녀)를 예우하는 중국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위해 피아를 가리지 않고 최적의 인물을 선정했다는 소식은 양국 외교가에서도 화제가 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도 포착된다. 공직을 한 번도 맡아보지 않은 노 대사가 과연 고차방정식과 같은 주중대사 임무를 잘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에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친구에 이어 대통령의 아들이 주중대사로 낙점된 것을 두고 개인의 자질보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냐며 의심하는 눈길이 적지 않다. 대통령의 친구이자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역대 최악의 주중대사로 꼽히는 정재호 전 대사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지에서는 전임 대사와 정확히 반대로만 하면 적어도 중간은 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권위주의를 떨치고, 교민사회와 우리 기업들을 살피고, 언론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대중 관계 개선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행보만 보면 합격점을 줄 만하다. 노 대사는 10월 16일 공항 도착과 동시에 도어스테핑 형식으로 특파원들을 만났고 곧바로 대사관으로 이동해 취임식을 진행했다. 취임식장에 들어서며 참석자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낮은 자세를 보인 점도 인상 깊었다. 2022년 톈진으로 입국해 도착하자마자 격리 시설에 들어갔던 전임 대사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직원들을 시켜 베이징에서 냉장고를 공수하고 취임식에서는 자신의 뒷모습을 찍지 말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노 대사는 취임 나흘 만에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성실한 답변으로 임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특히 교민들을 대상으로 열린 행사에 최소한만 참석했던 전 대사와 달리 노 대사는 한중민속페스티벌 같은 소소한 행사에도 직접 들려 교민들의 손을 맞잡고 목소리를 경청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주중한국상회가 11년간 100회를 개최하는 동안 전임 대사 그 누구도 참석하지 않은 ‘베이징 모닝포럼’에 주중대사로는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훈훈한 소식도 들렸다.
취재 환경이 극도로 제한된 중국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단적인 예로 한중 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설명하던 과정에서 너무 솔직히 하다 보니 다시 양해를 구하며 비보도를 요청해야 했을 정도다. 특파원들은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그의 진심을 느꼈기에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비보도를 지켰다. 관저 공개를 꺼렸던 전임 대사와 달리 노 대사는 특파원 대상 첫 정례 브리핑 이후 관저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내년 봄에 다시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노 대사가 취임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만큼 총평을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대사로서의 업무 능력을 보여주려면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실질적인 성과도 내야 한다. 그럼에도 지난 한 달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 정도면 기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양국 간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좋다는 점도 이러한 기대에 힘을 실어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방한해 정상회담을 가졌고 내년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답방도 예정돼 있다. 연일 ‘파격 행보’를 보이는 노 대사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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