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처방되는 DPP-4 억제제가 난치병인 파킨슨병의 진행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필휴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와 정승호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김연주 연세의대 의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장내 파킨슨병 유발 단백질 축적을 차단해 발병과 진행을 억제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중뇌 도파민 신경세포에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이 쌓여 발생하는데, 그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학계에서는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 장에서 시작해 미주신경을 따라 뇌로 이동한다는 '장-뇌 연결 축' 가설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혈당을 낮추는 것 외에도 신경세포 보호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 착안해 동물실험을 진행했다. DPP-4 억제제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처방되는 당뇨약 중 하나다. 체내에서 GLP-1 등 인크레틴 호르몬의 분해를 담당하는 DPP-4 효소를 차단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후 글루카곤 분비를 감소시켜 식후 혈당을 개선한다.
연구팀은 도파민 신경세포를 손상하는 로테논을 실험용 쥐에 투여해 파킨슨병을 유발했다. 마우스를 로테논에 지속해서 노출하면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 장-뇌 연결 축을 따라 이동하고 6개월 이후에는 도파민 신경세포 손상과 함께 떨림, 경직 등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 DPP-4 억제제 계열 성분 중 하나인 시타글립틴을 병용 투여하자 쥐의 장에서 염증 반응은 물론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체가 감소했다. 도파민 신경세포 손상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운동 능력도 개선됐다. 이 때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보니 유익균은 늘고 유해균은 줄었다.
DPP-4 억제제의 작용 원리를 살피기 위해 GLP-1 수용체의 활동을 제한했을 때도 파킨슨병 진행을 막는 효과가 동일하게 나타났다. GLP-1은 인슐린을 분비하고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으로, 수용체는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GLP-1를 통한 호르몬 대사 경로가 아니라 장내 면역, 염증 조절을 통해 작용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DPP-4 억제제가 파킨슨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을 넘어 예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확인했다"며 "기존 당뇨병 약물이 파킨슨병 진행 억제제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거트'(Gut)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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