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사진)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한일이 주도하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가능하다”며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판 나토는 지난해 9월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 취임 당시 중국 견제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강화 전략으로 제시하면서 논쟁을 일으켰던 구상이다.
윤 이사장은 5일 현대일본학회와 동북아재단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한일 수교 60주년 국제학술대회 초청 강연에서 이같이 밝히며 “미국과의 동맹을 튼튼히 유지하려는 한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맹 관계에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 미국의 행보에 크게 좌우되지 않으면서 권위주의 연대에 대처할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제기 당시부터 논쟁적이었다. 동맹국 일방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필요할 경우 무력 지원에 나서는 체제인 만큼 관련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아서다. 일본 내부적으로도 제한적인 집단자위권 및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평화헌법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구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불안 요소다. 또 중국은 아태 지역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자국을 견제할 가능성에 반발했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기 원하지 않는 인도·말레이시아 등은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미국 역시 미온적인 입장이다. 특히 동맹이나 ‘원조 나토’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에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아시아판 나토를 구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양자·삼자 관계를 통해 협력하고 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난관과 관련해 윤 이사장은 “한일이 협력해 미래지향적으로 판을 짜나가자는 의미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북한·중국·러시아가 점차 협력을 강화하는 반면 미국은 그간 국제 질서를 유지해왔던 리더십을 포기한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새로운 안보 협력의 청사진을 그려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일 3자 협력 체제의 필요성에 대해 미온적이며 확고한 지지 의사도 표명하지 않았다”면서 “그가 미국 우선주의 입장에서 비핵화 대신 군비 통제 관점에서 접근하고 단·중거리 미사일 위협은 소홀히 한 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에만 집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한일 양국은 여전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미중 대타협을 위해 대만의 이익이 희생될 수 있듯, 미국우선주의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아시아판 나토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뜻이 맞는 국가들 차원에서 단합한다면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 정치지도자들이 1998년이나 2003년 당시의 지도자들보다도 훨씬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양국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일본, 미국 모두 올해 리더십 교체가 있었던 만큼 올해는 한일 및 한미일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결정할 중요한 분기점”이라서다. 1998년은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2023년은 한미일 협력 제도화를 약속한 3국 정상 간 캠프데이비드 합의가 있었던 해다.
지난달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입장은 미지수다. 다만 그는 총리 선출 전인 지난 4월 대만에서 "일본과 한국, 호주, 필리핀 등 민주주의 국가들이 '준안보동맹'을 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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