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임대인의 상가 관리비 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른바 ‘관리비 꼼수’로 임대료를 높이고 소상공인을 내몰았던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잡는 의미 있는 변화다. 이 사안은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지방정부협의회’에서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입법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환산보증금 제도 폐지다.
현행법상 서울 기준 환산보증금이 9억 원을 넘으면 임차인은 재계약 시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 5%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환산보증금은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금액으로 산정되는데 월세 800만 원에 보증금 1억 원이라면 9억 원을 넘어 법 적용에서 벗어나게 된다. 법은 임대료 수준으로 보호 대상을 구분하고 있지만 상권이 급격히 성장한 성수동의 경우에는 이미 20% 이상의 임차인이 보호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성수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홍대·강남·제주 주요 상권에서도 수많은 상인들이 환산보증금 제도로 인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결국 이 제도는 상인을 지키기는커녕 건물주의 이익만 강화하는 장치로 변질됐다. 임차 상인을 보호하는 것은 곧 지역 경제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환산보증금 제도는 취지와 동떨어져 있으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제도는 영세 상인을 임대료 폭등과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으로 내몰고 있다.
서울은 9억 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과 부산은 6억 9000만 원, 광역시는 5억 4000만 원, 지방은 3억 7000만 원으로 환산보증금 상한이 정해져 있다. 이를 초과하면 건물주는 사실상 임대료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보증금과 월세가 높은 ‘좋은 건물’일수록 건물주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상대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임차인은 배제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환산보증금 제도는 지역 간 형평성도 해친다. 서울 강남과 강북의 임대료는 크게 다르지만 동일하게 9억 원 상한이 적용된다. 제주도의 경우 상한이 3억 7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일부 지역은 이미 서울과 맞먹는 임대료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경직된 기준은 제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해 경제생활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산보증금은 이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이제는 이 제도를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대안은 분명하다. 첫째, 임대차 보호 범위를 모든 임차인에게 적용해 건물 가치와 관계없이 영업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해 지역 실정에 맞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계약 갱신 요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상인들이 한자리에서 대대로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성동구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와 상생 협약을 통해 지역 상권을 지켜온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환산보증금 제도의 폐지와 새로운 상가 임대차 보호 체계 마련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상인의 땀과 노력이 존중받고 그 터전이 안전하게 지켜지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경제의 시작이다. 환산보증금 제도의 폐지는 우리 모두가 오래, 그리고 함께 가는 상생의 길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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