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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 성을 따른 다카이치 총리 부부의 '특별한 선택'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임병식 순천향대학교 대우교수·국립군산대학교 특임교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004년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야마모토 타쿠 당시 중의원과 결혼식을 올린 모습.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부부는 왜 같은 성(姓)을 쓸까. 부부가 성이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도 드물다. 한데 두 사람은 성이 같은 것은 물론이고, 남편이 아내 성을 따랐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우리나라도 부부가 합의하면 자녀는 엄마 성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흔치 않고, 더구나 남편이 아내 성을 따라 바꾸는 경우는 없다.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일본 민법은 “부부는 같은 성(姓)을 써야 한다”고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남편 성이든, 아내 성이든 선택은 부부 권한이다. 다만 서로 다른 성을 유지한 채 혼인신고는 할 수 없다. 결국 한쪽 성으로 통일해야 한다. 일본은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부부동성을 의무화한 나라로써 항상 논쟁거리다. 현실에서는 대략 95% 이상 아내가 남편 성으로 바꾼다. “아내가 남편 성을 따른다”가 일반적이며, “남편이 아내 성을 따른다”는 아주 예외적이다. 이러니 다카이치 총리 부부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와 다카이치 타쿠(高市 拓) 부부는 결혼과 이혼, 재혼을 반복했다. 이들이 처음 결혼한 2004년은 남편(당시 야마모토 타쿠)은 중의원 신분이었지만 아내(다카이치 사나에)는 중의원 4선 도전에 실패해 실의에 빠졌을 때였다. 둘 다 주목받는 정치인이라서 당시에도 화제였다. 이때는 이들도 일반적인 경우를 따랐다. 다카이치 사나에가 남편 성을 따라 야마모토 사나에(山本早苗)로 바꿨다. 다만 정치 활동, 언론 노출, 선거 과정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를 썼다. 정치하면서 그동안 쌓은 ‘다카이치’라는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두 사람은 결혼생활 13년 만인 2017년 7월 이혼했다. 사유는 “정치적 견해 차이와 진로 차이”였다. 둘은 2021년 12월 재혼했다. 이번에는 남편 야마모토 타쿠가 아내의 성을 받아 ‘다카이치 타쿠’로 변경했다. 현행법에 맞춰 누군가는 바꿔야 하는데, 남편이 바꾼 것이다. “왜 부부가 같은 성씨를 갖게 되었나?”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은 혼인신고 자체가 안 되는 현행법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번에는 남편이 바꿨을까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다카이치 총리 부부는 그 이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공개된 정보와 정치적 맥락을 토대로 추론하자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정치적 이유다. 재혼한 2021년은 다카이치 사나에가 자민당 총재 경선에 나서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떠오른 시기다.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이름 자체가 ‘정치 브랜드’였다. 만약 남편 성(야마모토)으로 바꾸면 유권자들에게 혼선을 주고 선거 관리도 복잡해진다. 일본 여성 정치인 가운데 상당수는 법적으로는 남편 성이지만, 선거·의정 활동에서는 원래 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둘째, 상징성이다.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른 건 일본 사회 기준에서 보면 ‘역전된 선택’으로, 가치관의 전환을 뜻한다. 일본 언론이 ‘철의 여인’으로 부르는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위상을 감안하면, 남편이 뒤에서 조용히 지지하는 모습은 ‘성역전(性逆轉)’의 시대적 상징으로 읽힌다. 실제로 남편 다카이치 타쿠는 “나는 스텔스 남편으로, 아내의 정책 추진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돕겠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그를 ‘보이지 않는 조력자’로 묘사했고, 직접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챙긴다는 기사도 이어졌다.

셋째, 현실적 고려다. 남편 타쿠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정치 일선에서 한발 물러선 반면 아내는 국가를 이끄는 위치에 올랐다. 이제는 남편이 아내를 뒷받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이 된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4~2025년 자민당 총재 선거, 2025년 10월 일본 최초 여성 총리까지 올랐다. 커리어 중심축이 누구에게 있는지 고려하면 남편이 성을 바꾸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결국 “둘 중 누가됐든 바꿔야 했고, 정치적으로 전국구 인지도를 지닌 다카이치를 위해 남편이 ‘다카이치’를 택했다”가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그만큼 이번 결정에는 실용적 판단이 깔려 있다.

끝으로 재혼 당시 나이다. 두 사람 모두 60대였다. 60대는 젊은 신혼부부처럼 ‘집안 어르신’이 호적을 좌우하는 나이가 아니다. 당사자들 의지에 따라 정치적 전략을 우선한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일본에는 ‘무코요시(婿養子)’로 불리는 제도가 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 사위가 양자로 들어가 장인 집의 성을 잇는 관습이다. 그러나 이는 주로 상공인 가문에서 가업을 잇기 위한 제도였고, 정치인 부부의 선택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카이치 부부의 경우는 전통보다는 당사자의 의지와 정치적 상황이 우선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례는 일본 사회에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부부동성’ 제도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나라에서, 남편이 아내 성을 따랐다는 사실은 젠더 감수성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이 ‘부부별성(夫婦別姓)’ 제도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정치권의 반대는 여전하다. 역설적으로 부부동성 제도의 대표 사례가 다카이치 총리 자신이 된 셈이다. 결혼과 이혼, 재혼, 그리고 다시 하나의 성으로 이어진 이들 행보는 단순한 사생활을 넘어 일본 사회의 변화와 전통이 충돌하는 단면을 보여준다. 다카이치 부부의 ‘같은 성’은 일본 사회에 던지는 작은 파문이자, 변화의 신호로 읽힌다. 다카이치 총리의 파격적인 행보가 한일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한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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