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권 중심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환 관리와 통화정책 유효성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비은행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한은 디지털화폐 시스템을 기반으로 테스트 중인 예금토큰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함께 사용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한은은 27일 공개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경제의 새 가능성을 여는 열쇠일 수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며 "혁신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신뢰가 중요한 만큼 제도적 안전판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분량이 141페이지에 이르는 이번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보·연구·논란을 총정리한 '한은판 스테이블코인 백서'로 향후 입법 논의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시 △디페깅(Depegging) △디지털 뱅크런 △소비자보호 공백 △금산분리 원칙 훼손 △자본유출 △통화정책 효과 약화 △은행 대출 여력 감소 등 예상되는 7가지 위험을 제시했다.
한은이 언급한 해외 사례를 보면 스테이블코인은 본질적으로 법정통화와 '1대 1 가치 유지'를 약속하지만 2023년 초 USDC(써클)의 경우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영향으로 한 때 0.88달러까지 떨어졌다. 한은은 "'1코인=1원' 약속은 발행사와 이용자 간 사적 계약일 뿐 국가나 중앙은행이 이를 법·제도적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며 "발행사가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는 예금자와 달리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호도 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을 정보기술(IT)·비은행 기업이 발행하는 것은 이들에게 화폐 발행과 지급 결제 이른바 내로우뱅킹(대출을 뺀 은행업무)을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자본이 은행업을 직접 영위하지 못하게 막은 금산분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외환·자본 규제를 우회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예를 들어 국내 투자자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익명 거래가 가능한 개인 지갑으로 옮긴 뒤 달러 스테이블코인 등 다른 자산으로 바꿔 해외로 옮겨도 현재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약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은은 현재 지급준비제도, 공개시장운영, 은행 앞 유동성 대출제도 등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 관련 통제 수단이 없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국채 등 안전자산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더라도 투자자의 대규모 인출 요구가 몰리면 단기 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으며 주요국 중앙은행 역시 통화정책 효과를 위해 적절한 규제를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초기 단계에서 은행이 발행과 규제 준수를 책임지고 비은행은 기술 혁신과 상품 개발·유통을 담당하는 컨소시엄 형태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통화(한국은행), 외환(기획재정부), 금융(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 간 합의에 기반한 정책협의기구 구성을 권고하며, 발행자 자격, 발행량, 준비자산 구성 기준 등 주요 의사결정도 부처 간 협의로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금 토큰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병행 사용하자는 주장도 함께 내놨다. 예금 토큰은 은행 예금을 토큰 형태의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한 것으로, 한은이 운영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한다. 금융소비자들은 이 예금 토큰을 물품이나 서비스 구매 등에 사용할 수 있다.
한은은 “한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의 책무를 부여받은 중앙은행으로서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및 금융시스템에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의무”라며 “혁신을 가로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혁신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율을 포함한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르면 다음달에는 정부안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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