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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PEF, 차입으로 대형 M&A 싹쓸이[시그널]

1조 이상 빅딜, 올 합산액 7.9조

1년만에 국내업체와 격차 2조 가까이 벌려

맥쿼리자산운용이 최근 매각한 DIG에어가스. 사진=DIG에어가스홈페이지 캡쳐




이른바 ‘빅딜’로 불리는 1조 원 이상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글로벌 사모펀드(PEF)가 국내 PEF를 압도했다. 글로벌 PEF들이 막대한 차입을 토대로 국내 PEF를 제쳤다.

24일 서울경제신문 시그널 리그테이블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조 원 이상 기업 인수·매각 거래 합산 금액은 글로벌 PEF는 7조 8700억 원이고 국내 PEF는 5조 9000억 원이었다. 대표적으로 매각가 4조 8500억 원에 달하는 DIG에어가스 인수전의 경우 매도는 맥쿼리자산운용, 매수는 에어리퀴드로 해외 업체만의 무대였다.

불과 1년 전 글로벌 PEF와 국내 PEF의 거래 규모가 각각 7조 6000억 원과 7조 4700억 원으로 엇비슷했고 2023년에는 오히려 국내 PEF가 7조 8000억 원으로 글로벌 PEF를 2000억 원 앞섰는데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특히 국내 PEF에 차입 거래 규제가 강화되면 다양한 방식의 차입 구조로 대형 거래에 뛰어드는 글로벌 PEF에 안방을 내줘야 할 처지가 됐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내 PEF의 차입 거래를 규제하고 연간 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국내에 적을 두지 않는 글로벌 PEF에는 동등하게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PEF는 몇 년 후 차익을 챙겨 떠나고 그들의 투자가 꼭 국내 산업을 키우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악명 얻은 LBO 국내 규제해도 해외는 훨훨…글로벌PEF에 적용하겠다지만 방법 없어




올해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좌우한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거래 6건 중 5건은 차입매수(LBO)가 기반이었다. 국회는 PEF의 차입매수를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으로 정의하고 규제 법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PEF들은 국회의 법안 개정과 관계없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차입매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국회의 규제를 도입하면 국내에 PEF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중국 투자길이 막히자 일본에 이어 한국을 주시하는 글로벌 PEF들이 잇따라 빅딜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정작 국내 PEF는 발이 묶인 상황에 처한 것이다.



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에서 완료했거나 추진 중인 기업 경영권 거래에 글로벌 PEF가 참여한 사례는 크게 6건이다. △EQT파트너스의 리멤버와 더존비즈온 인수 추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SK에코플랜트 환경 자회사와 삼화 인수△베인캐피털의 HS효성 스틸타이어코드 인수 추진 △맥쿼리자산운용의 DIG에어가스 매각이 해당한다.

이 가운데 5000억 원 규모인 리멤버 인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국내외에서 많게는 전체 투자금의 60%까지 차입매수를 활용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차입매수를 악으로 규정하지만 지분 투자 비중과 대출 비중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은 투자금을 최소화해 수익률을 최대화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QT가 리멤버에 대해 차입매수를 일으키지 않은 것은 글로벌 PEF 관점에서 보면 거래 규모가 작은 데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아직 이익이 크지 않은 플랫폼 기업에 대출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차입매수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혹은 대출 기관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 차입매수 비중이 낮은 편이다. 반면 미국은 다양한 차입매수 방식을 발전시키며 전 세계 기업 경영권 거래를 좌우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차입매수가 자유롭고, 당국이 가이드라인만 주고 금융기관이 알아서 관리하도록 자율성을 준 후 결과적으로 관리를 안 했을 때만 벌금을 높게 매긴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규제에 20년전 '론스타 먹튀' 되풀이 우려…과도한 차입·비용 절감 몰두 바꿔야 지적도


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월 2일 야3당 정무위원들이 MBK·홈플러스 사태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차입매수 규제를 강화할 경우 과거 외환위기 당시 글로벌 PEF의 먹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1997년 국가를 강타한 외환위기 사태를 계기로 2005년 국내 PEF가 처음 등장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주문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매물로 쌓인 국내 기업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 것은 글로벌 PEF밖에 없었다. 매도자만 있고 인수자가 없는 시장에서 국내 기업은 글로벌 PEF에 헐값에 넘어갔고, 그들은 단기간에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 대표적인 게 론스타·외환은행 사태다. 결국 김석동 당시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등 정부 관료들이 먼저 나서 국내 자본으로 PEF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자본시장법을 도입했다.

김현정·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해 국회가 추진 중인 사모펀드 규제 법안은 펀드 순자산 기준 차입 한도를 400%에서 200%로 낮추고, 국민연금이 차입매수 전략을 쓰는 PEF에 출자하려면 별도로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수 후 2년간 자산 매각을 금지하고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자산 내역 및 위험관리 등을 공시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어 비공개로 빠른 의사 결정을 기본 전략으로 하는 PEF의 운용 방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21일 국정감사에서 PEF의 차입매수 방식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사모펀드 관리·감독 체계를 대폭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국민연금을 상대로 진행한 국감에서도 “약탈적인 국내 사모펀드에 국민연금 출자를 금지해야 한다(백혜련 민주당 의원)”는 발언이 나오는 등 단순 차입매수 금지를 넘어 PEF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타났다.

문제는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글로벌 PEF에도 같은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이들 중 다수는 국내에 사모펀드 인가를 받지 않은 일반 법인이거나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이후 벌어질 후폭풍을 정치권이 책임질 것이냐고 하소연한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외환위기 때 헐값에 나라를 팔았는데 이제 국내 자본으로 M&A를 하자고 해서 만든 PEF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것”이라면서 “국민연금은 정책자금이 아니라 국민 노후를 위해 투자하는 돈인데 국회에서 사모투자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티가 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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