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첨단전략산업보다 그 규모는 작지만 같은 금액을 투자했을 때 부가가치·고용 유발효과는 더 높다는 연구가 나왔다.
21일 산업연구원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의뢰로 진행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성과 및 발전방향 연구’ 보고서를 보면 반도체·디스플레이·의약품 등 3개 산업간 연관관계를 수량적으로 분석한 결과 의약품 산업이 부가가치 및 고용유발효과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연구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창립 80주년을 맞아 의뢰했다.
연구진 한국은행의 2020·2022년 산업연관표를 토대로 3개 산업의 생산유발효과, 부가가치 유발효과, 고용유발효과를 분석했다. 산업별로 5000억 원씩 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의약품의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022년 한국은행 계수 기준으로 3600억원이었다. 나란히 2950억 원을 나타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1.22배에 해당한다. 고용 유발효과는 2055명이었다. 반도체(780명)의 2.6배, 디스플레이(1620명)의 1.26배에 이른다.
다만 의약품 산업의 생산유발효과는 9600억 원으로 반도체(6900억 원)보다 높았지만 디스플레이(1조 450억 원)보다는 낮았다. 이는 의약품 산업이 나머지 두 산업보다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은 탓에 각 산업별 생산액의 1% 투자 증가를 전제할 경우 경제적 효과는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게 보고서 내 설명이다.
보고서는 제네릭(복제약) 활성화가 국내 감염병 대응력 강화,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 의약품 접근성 제고 등 여러 면에서 공공의료 시스템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분석했다. 2017년 특허가 만료된 뒤 제네릭이 잇따라 출시된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제네릭 출시 후 약가가 40% 낮아졌고 2019~2023년까지 건강보험 재정 1283억원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들이 창출한 사회적 후생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HK이노엔 ‘케이캡’, 대웅제약 ‘펙수클루’, 온코닉테라퓨틱스 ‘자큐보’ 등 국산 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신약의 사회적 후생효과를 추계했다. 이들 신약의 처방이 1000만 원 증가하면 환자 수는 평균 7.9명 줄었고, 처방액이 100만 원 늘면 관련 병원을 찾는 일수와 보험 청구 건수가 각각 3.0일, 2.9건 감소했다. 백신의 경우 국내 생산실적이 2019~2023년 사이 연평균 16.3% 증가하면서 예방접종 대상 백신의 자급률은 2019년 52.8%에서 2023년 63.6%로 높아졌다. 다만 22개 예방접종 백신 중 11개는 여전히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산화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연구책임자인 정지은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높은 부가가치 창출과 고용 확대에 기여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이 국민 건강 증진과 공공 재정 절감에도 기여하는 가치가 큰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수익성은 낮지만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 대해 기술 성과 확보와 공동 개발을 지원해 기업들의 혁신과 생산을 유인할 수 있도록 적절한 보상체계나 우대제도 마련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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