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치료 전략을 짜기 어려웠던 뇌출혈 환자 4명이 모두 세브란스병원에서 회복했다.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디지털 감산 척수조영술(Digital Subtraction Myelography·DSM)이 기존 진단법의 한계를 극복한 비결로 꼽힌다.
세브란스병원은 주민경·하우석 신경과 교수와 하윤 신경외과 교수가 국내 최초로 '뇌척수액 정맥 누공'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성공했다고 17일 밝혔다.
뇌척수액 정맥 누공은 자발성 두개내 저압증의 드문 형태 중 하나다. 뇌를 보호하고 두개 내 압력을 유지하는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인 통로(누공)’를 통해 척수 주변의 정맥으로 새나간다. 명확한 원인 없이 발병하기 때문에 진단이 어렵다. 하지만 제 때 조치하지 않으면 뇌의 압력을 떨어뜨려 여러 가지 증상을 일으킨다. 일어서면 두통이 심해지는 기립성 두통,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문제 해결력이 낮아지는 인지기능 저하, 보행장애까지 발생해 일상에 큰 지장을 준다.
더욱 큰 문제는 일반적인 자발성 두개내 저압증과 달리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정상 소견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뇌척수액 정맥 누공 환자들은 원인 규명부터 치료까지 난항을 겪는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번에 치료를 받은 환자 4명도 세브란스병원에 오기 전 뇌압이 낮아져 두통이 생기는 ‘자발성 두개내 저하증’이 의심됐다. 하지만 척추 MRI와 단순 척수 조영술 검사에서는 전부 정상 소견을 보였다. 본인의 혈액으로 뇌척수액 누출 위치를 막는 자가혈액패취술 등을 시행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던 이유다. 뇌의 압력이 낮아진 탓에 뇌를 감싸는 경막의 내부와 정맥을 이어주는 교량정맥이 끊어지면서 경막하출혈이 발생했고, 스스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택한 DSM은 척수에 조영제를 주입하고 모니터 화면으로 뇌척수액의 흐름을 실시간 확인하는 최신 기법이다. 뇌척수액이 새나가는 구멍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의료진은 측위 컴퓨터단층촬영(CT) 척수 조영술을 함께 시행해 뇌척수가 새어나가는 부위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했다. 그 결과 4명 모두 뇌압을 회복했고 경막하출혈이 사라졌다. 환자들이 보였던 인지기능 저하와 보행장애도 모두 호전됐다.
하우석 교수는 “자발성 두개내압 저하증과 특별한 외상이 없이 발생하는 경막하출혈의 원인 중 하나였던 뇌척수액 척수 누공은 두통, 인지능력 저하 등 심각한 고통을 일으키지만 기존 진단법으로는 원인 규명이 쉽지 않았다”며 “세브란스병원이 도입한 DSM과 측위 CT 척수 조영술로 척수액 누출이 발생하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