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5일 해군 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 한반도 주변 수역을 포함해 미국의 인도·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제7함대사령부 소속 함정인 ‘블루릿지함’(LCC-19)이 들어왔다. 상륙지휘함(Amphibious Command Ship) 블루릿지급 1번함인 블루릿지함의 부산기지 입항은 2020년 2월 이후 약 5년 7개월 만이다. 7함대를 상징하는 지휘함으로 1970년 취역해 올해로 56년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최고령’ 미국 함정이다.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기지를 모항으로 활동한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군사전문지인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미 해군의 조함계획에 따라 블루릿지함은 오는 2039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미국인데 이 함정을 70년 가량 쓰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디펜스뉴스가 보도한 장기 조함계획에 따르면 미 해군은 ‘LCC’(X) 또는 ‘JCC’라 불리는 차기 지휘함 도입계획을 금전적 이유로 계속 연기하면서 현재 운항되는 지휘함들은 오는 2039년까지 사용하기로 수명이 연장된 셈이다. 당초 계획은 2029년에 대체할 예정이었다. 1년 늦게 취역한 자매함 ‘마운트 위트니’(LCC-20) 역시 2039년까지 현역에 남는다. 블루릿지급 2번함인 마운트 위트니함은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미 6함대사령부의 기함이다.
블루릿지함은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미군의 핵심 전력이다.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구축함, 잠수함 등을 지휘·통제한다. 이 때문에 함정 내부에는 전술기함 지휘본부, 합동작전본부, 합동정보본부, 상륙군 작전지휘소 등 4개의 작전 지휘소가 운영돼 ‘바다의 사령관’ 또는 ‘해상의 전쟁지휘소’로 불린다.
블루릿지함은 길이 194m, 폭 33m, 만재배수량 1만 9000t의 대형 지휘함으로 7함대 지휘부와 승조원 등 1000여 명이 승선한다. 내부에는 각종 지휘시설과 첨단 통신장비가 가득 차 있다.
다만 지휘함인 까닭에 자체 방어를 위해 근접방어무기체계(CIWS)인 페일랭스 기관포 2문과 원격 조종하는 구경 25㎜ 부시마스터 기관포 2문, 구경 12.5㎜ 기관총 4문 등으로 무장했다. 대함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사일 기만기 발사대와 전자전장비 일부 탑재했다. 최고속도는 23노트(시속 42㎞)다. 수송과 대잠작전을 위해 MH-60 헬기도 배치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엔13개월에 걸친 수리와 정비를 통해 최첨단 컴퓨터망과 인터페이스, 최신의 통신시스템 업그레이드해 등으로 전자장비를 최신화했다. 역사상 가장 첨단의 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망(C4I)을 갖춘 함정으로 평가 받는다. 한마디로 ‘떠다니는 거대한 전투 두뇌’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15~19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실시된 세 번째인 한미일 다영역 훈련 ‘2025 프리덤 에지’에 참여해 불참한 항공모함을 대신해 지휘함으로서의 위상을 톡톡히 과시했다.
미 해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함정은 핵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CVN-65)으로 지난 1961년 취역해 2013년 공식 퇴역했다. 현역으로 52년 간 현역으로 활동한 것이 최장 기록이다.
만약 블루릿지함이 조함 계획대로 현역으로 남게 되면 무려 70년을 물 위에 떠 있게 돼 미 해군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함정으로 기록되게 된다. 다만 지난 1797년에 진수된 목재 범선 ‘컨스티튜션함’(USS Constitution)이 현역으로 분류돼 있지만 이 함정은 보존을 위해 남겨진 것으로 ‘작전용’은 아니다.
일반적인 함정의 수명은 30년 안팎이다. 우리나라 해군의 ‘운봉함’(LST-671)이 63년 기록을 갖고 있다. 운봉함은 1944년 미국에서 건조된 전차상륙함으로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 다양한 전투에 참전한 뒤 1955년 대한민국 해군에 인계돼 2006년 퇴역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상륙작전의 핵심 역할을 하는 상륙지휘함은 해안 상륙작전의 복잡성과 여러 부대 간의 의사소통 및 지휘 통제 필요성 때문에 등장했다. 다양한 통신 장비를 갖춘 ‘해상의 전쟁지휘소’라고 불리는 이유다. 상륙작전 지역 근처에 위치해 모든 상황을 살피며 작전을 총괄한다.
상륙지휘함인 블루릿지급 1번함 블루릿지함은 타라와(Tarawa)급·아메리카(America)급·와스프(Wasp)급 같은 강습상륙함에 지휘통제체계를 탑재해 자체 상륙작전 지휘·통제가 가능하도록 개량해 기동함대사령부의 기함으로 임무가 변경된 함정이다.
블루릿지함은 1975년 4월 말 남베트남 정부가 붕괴될 당시 구엔 카오 키(Nguyễn Cao Kỳ) 부통령이 헬기를 타고 탈출해 착륙한 함정으로 유명하다. 남베트남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베트남 전쟁 메달을 수여받았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일본 동북부 지진 발생 직후 싱가포르항에 정박해 있다 구호물자를 싣고 긴급 출동해 재해 지원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블루릿지급 2번함인 마운트 휘트니함은 취역 이후 상륙지휘함으로 활동하다가 1999년에 상륙지휘함인 라살 함(AGF-3)이 퇴역하면서 6함대 기함의 임무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1년 3월에 실시한 리비아 공습작전 당시 참가한 연합군을 지휘하는 임무를 맡아서 활약했다.
상륙지휘함의 등장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이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이 점령한 섬들을 차례로 점령하는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육·해·공군 입체작전의 특징을 가진 상륙작전은 지휘·통제가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경험한 데서 비롯한다.
처음에 미 해군은 일부 상륙수송함을 차출해 병력과 화물 탑재 공간에 지휘용 통신장비를 설치한 상륙지휘함(AGC·Amphibious Force Flagship)으로 개조해 활동했다. 1975년 6월 이후 명칭 변경에 따라 LCC(Amphibious Command Ship)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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