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을 뇌물로 규정하고 이혼 재산 분할에서 불법 자금을 배우자의 ‘기여분’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적으로 조성된 돈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만큼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으며 설령 부부 공동재산 형성에 쓰였더라도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로써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소송’은 다시 법정으로 돌아가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위자료, 재산 분할 상고심에서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지원을 노 관장의 기여로 본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원심 중 재산 분할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하는 위자료 20억 원은 원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관련기사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뇌물로 사돈이자 자녀 부부에게 돈을 건넨 행위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한다”며 “이 같은 자금은 법적 보호 가치가 없어 재산 분할의 기여로 고려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민사상 ‘불법원인급여’ 원칙을 이혼 재산 분할에 처음 적용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부정한 자금이 사적 분쟁을 통해 합법적 이익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또한 최 회장이 혼인 관계가 파탄되기 전 친인척이나 재단 등에 증여한 SK㈜, SK C&C 주식은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혼인 중 처분한 재산이라도 기업 경영이나 재산 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의 일환이었다면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볼 수 없고 이미 처분된 재산을 다시 나눌 수도 없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항소심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인정한 재산 분할금 1조 3808억 원은 전면 재심리 대상이 됐다. 앞서 1심은 노 관장의 기여도를 낮게 봐 재산 분할금 665억 원만 인정했으나 2심은 SK그룹의 성장에 노 관장이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판단해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을 결정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