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딴죽’과 미국 정부의 자국 원전 모델 채택 ‘몽니’로 한국 원전 산업이 안팎의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산업통상부에서 원전 정책을 건네받은 기후부가 ‘원전 딴지 걸기’ 행태를 보이는 점이 아쉽다. 김 장관은 14일 국정감사에서 “신규 원전 2기 건설은 재검토하는 것이냐”는 야당의 질의에 “필요성이 없거나 혹시 신청하는 곳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로 확정한 내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재명 정부의 첫 국감인데도 기후부는 국회에 에너지 분야 업무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당 의원들마저 “잘못됐다”고 지적하자 김 장관은 “추석 연휴로 업무보고 진행이 어려웠다”며 책임 회피성 변명만 늘어놓았다. 기후부가 우리 원전 산업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과연 육성할 의지는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전을 수출할 때 웨스팅하우스(WEC)의 원전 모델 ‘AP1000’을 채택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한국의 수출 모델 ‘APR1400’ 대신 미국 모델을 적용하고 공동 수주에 나서야 한다는 상식 밖의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한 기세를 몰아 수출 다변화에 나서고 있는 우리 기업에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고 자동차·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원전 육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다행히 김 장관은 15일 고리 2호기 원자력발전소를 찾아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을 병행한 균형 잡힌 에너지믹스를 달성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WEC의 압박으로 수출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원전 산업에 활로를 열어주려면 국내 신규 원전 건설 정책 방향을 보다 전향적으로 바꿔 ‘K원전’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크게 높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글로벌 시대 흐름을 놓치지 말고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믹스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들이 원전 가동 연한을 연장하고 서둘러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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