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정부가 캄보디아 거대 범죄 단지(웬치)의 몸통으로 지목된 중국계 사기 조직의 자산 수십조 원을 압류하며 대대적인 제재에 착수했다. 이 조직은 여러 국적의 피해자들을 웬치에 납치·감금한 뒤 온라인 사기 행각에 가담시켜 막대한 수익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생 납치 살해 사건을 계기로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서방국가들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한발 앞서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현지 시간) 미국 재무부는 영국 외무부와의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계 프린스그룹을 초국가적 범죄 조직으로 규정하고 천즈 회장을 비롯한 관련 개인·단체를 상대로 146개의 제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강제 노동을 위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이 사기범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인신매매 및 현대판 노예제에 의존하는 범죄들은 기업 자료에서도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또 미 법무부는 천즈를 온라인 금융 사기 및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하고 그가 보유한 약 150억 달러(약 21조 원) 상당의 비트코인 12만 7271개를 압류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압류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미국 정부가 천즈의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유죄 확정 시 최대 4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영국 정부 역시 1200만 파운드(약 230억 원)에 달하는 저택과 1억 파운드(약 1900억 원) 가치의 사무용 건물, 아파트 17채 등 천즈와 프린스그룹이 소유한 런던 소재 부동산을 압류 조치했다.
중국계 천즈가 2015년 프놈펜에 설립한 프린스그룹은 부동산으로 시작해 물류·금융 등 각종 사업에 손을 뻗으며 10년 만에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겉으로는 멀쩡한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태자 단지’를 비롯해 캄보디아 내에서만 최소 10개의 범죄 단지를 조성·운영해 얻은 수익금으로 빠르게 세(勢)를 불려왔다는 것이 미국과 영국 정부의 설명이다. 이들 범죄 단지는 가짜 구인 광고로 외국인들을 유인해 감금·고문한 뒤 보이스피싱·로맨스스캠 등 온라인 사기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범죄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천즈가 ‘사기 제국’을 일궈낼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현지 정치인들과의 긴밀한 유착이 지목된다. 천즈는 캄보디아의 최고 권력자로 꼽히는 훈 센 상원의장(전 총리)의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유력 정치인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다. 현재는 훈 센 전 총리의 아들인 훈 마네트 현 총리의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천즈는 1987년 중국 푸젠성에서 출생했지만 2014년 캄보디아로 귀화했고 범죄 행각으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활용해 대표적 조세 회피처인 키프로스와 바누아투 국적까지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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