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 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성분명처방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탄 데다 정부가 위수탁 과정의 비용정산 관행에 칼을 빼들자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책위)’ 구성을 공식화하고 25일 의협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소집해 결의할 예정이다.
새 정부와 화해 무드를 조성했던 의협이 돌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국회에서 성분명처방을 의무화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이 발단이 됐다. 현행법상 약사는 의사가 처방전에 써준 의약품만 환자에게 조제해야 한다. 성분명처방은 의사가 의약품 상품명 대신 약물의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제도다. '타이레놀'(상품명)이 아닌 '아세트아미노펜'(성분명)을 처방전에 써주는 식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약국에서는 성분이 같은 복제약(제네릭)을 조제할 수 있다. 의사들은 이에 대해 "동일 성분이라도 임상 반응은 다를 수 있고, 특히 소아·고령자·중증질환자 등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주원인은 정부의 일방적 약가 결정과 경제 논리만을 따진 제약사의 생산 중단 등 구조적 문제”라며 줄곧 반대해왔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검체검사 위탁검사관리료를 폐지하고, 검체검사 시행기관인 병의원과 수탁을 받는 검사센터 간 비용을 분리해 청구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하자 의사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의협 내부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임시대의원총회를 개최하자는 안건까지 발의됐을 정도로 반발이 심했다. 현재 건강보험은 검체검사 비용의 110%를 검사 의뢰 기관에 지급한다. 병의원은 이 중 10%의 관리료를 제외한 100%를 검사센터에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검사센터가 병의원과의 계약을 위해 검사료의 상당 부분을 할인해주거나 일부를 되돌려주는 방식이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이같은 관행은 검사센터의 수익성을 떨어뜨려 검사 품질이 저하되고,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개편에 나섰다. 복지부는 현재 10%로 책정된 위탁관리료를 폐지하고, 위수탁기관이 기존 검사료 안에서 고시 확정 비율에 따라 정산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르면 다음 달 고시개정안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의협은 “복지부 방침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비민주적 조치이자 행정 폭거”라며 “정부가 끝내 의료계와의 협의를 외면하고 일방통행을 지속할 경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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